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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미면 공이리 암수바위(乷味面 公耳里 암수바위)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살미면 공이리 암수바위(乷味面 公耳里 암수바위)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0. 5. 15. 19:34

 

충청북도 충주시 살미면 공이리에서 암소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입니다.


「암소바위」 이야기는 살미면 서갑벌에서 공이동 하리를 향해 올라가는 약 16㎞ 지점에 있는 암소바위와 관련된 암석유래담이다.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실려 있는데, 당시 살미면 공이리에 살고 있던 주민 안편식으로부터 채록한 것이다. 1981년 중원군에서 발행한 『내고장 전통가꾸기』와 2002년 충주시에서 간행한 『충주의 구비문학』에도 각각 수록되어 있는데 내용은 대동소이하다.조선 초기 이진사(고려조 사관을 하던 술자도인)라는 사람이 공이동 어구에 자리를 잡은 후 아담한 정자를 세우고 세월을 보내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있는 곳을 신선이 단풍을 구경하는 자리라 하여 선관정이라 불렀다. 그런데 어느 노인이 경치는 좋은데 수석이 없으니 이곳에 바위를 갖다 놓으라고 말하였다. 이에 이진사는 경상도 땅에 이곳에 어울리는 바위가 있는데 그것을 싣고 오려면 개골산 정기를 받고 태어난 암소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노인이 잠시 묵상에 잠기더니 “합천 가야 땅 구미고을에 가면 그 암소를 구할 것이니 싣고 오라”고 하였다. 종자들이 천량을 주고 진해고을에 가서 바위 두 개를 싣고 왔다. 소가 바위를 싣고 선관정 앞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하늘에서 천둥이 일며 지나가자 암소가 바위에 앞발을 딛고 우뚝 서면서 하늘을 바라보다가 천둥소리가 멎자 비호처럼 능선을 달려 눈 깜작할 사이에 없어지고 말았다. 그 때 암소가 딛고 섰던 자리에 발자국이 찍혀졌다고 하며, ‘암소가 싣고 온 바위’라고 해서 ‘암소바위’라고 부르게 되었다.「암소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발자국과 바위만 남기고 사라진 암소’이다. 공이동 입구에 있는 암소바위는 본래 경상도에 있는 바위였다. 공이동은 신선이 단풍을 구경한다는 선관정이 있을 정도로 자연경관이 뛰어난 곳이다. 그러나 수석이 없어 매우 아쉬웠으므로 이를 보완하고자 암소를 이용하여 바위를 이곳으로 운반해 왔다. 암소는 대지의 생산력·풍부·생식·모성본능의 상징이다. 또한 승경지를 선경지로 만들기 위해 바위가 필요한데 이를 대지의 신이 옮겨 주고 있어 흥미롭다. 그리고 술자도인이 등장하는데 술자도인의 정체는 신선이라고 볼 수 있으며, 그의 신통력이 나타나 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살미면 공이리 암수바위 각자.(乷味面 公耳里 암수바위 刻字) (tistory.com)

 

살미면 공이리 암수바위 각자.(乷味面 公耳里 암수바위 刻字)

살미면 공이동 암수바위가 있는 계곡에 있는 암벽과 암반에 새겨진 각자와 그림입니다.이 곳에 머물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는 사형제의 이름이 암수바위에 새겨져 있네요. 공이리는 암소바

king6113.tistory.com

 

 

 이곳 공이리로 들어가는 길목에 암소바위라 하는 곳이 있는데 숫바위 아래에 자웅암석 공동산수 라고 적혀있는 암각자가 있다. 평평한 바위에 바둑판이 새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