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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석등(浮石寺 石燈) 본문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榮州浮石寺無量壽殿-石燈)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설치되어 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은 국보 제1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4각의 2중 기대석 위에 8각을 기본으로 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의 각 부재는 상륜부만이 일부 파손되었을 뿐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는데, 지표면에 하단부가 묻혀 대석의 하단부는 확인하기가 어렵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의 지대석은 4매석으로 윗면에 3단의 기단 받침을 마련하였다. 정사각형의 기단석은 각 측면에 2구씩의 안상을 배치하였고, 윗면에는 팔각으로 3단의 하대 받침을 마련하였다. 하대석은 모서리를 향하여 한 잎씩 복판복련이 조각되었고 꽃잎 끝은 말려서 귀꽃이 되었다. 특히 복련 중심에는 높은 3단의 받침이 있어 연꽃 속에서 간주를 받쳐 올리는 듯이 표현되었다. 간주석은 전형적인 팔각주로서 굵기나 높이가 아름다운 비례를 보인다. 상대석은 통식을 따라 평박하나 여기에 조각된 8엽의 앙련은 상당한 입체성을 보여주고 있다.
화사석(火舍石)은 팔각으로 네 곳에 장방형 화창(火窓)을 내었고 화창 주위에는 창문을 고정했던 작은 구멍이 남아 있으며, 나머지 네 면에는 앙련 위에 보살입상 1구씩이 조각되었는데 조각 수법이 매우 정교하다. 옥개석은 전각이 뚜렷하고 후대 석등보다 옥개석의 두께가 얇고 날렵한 편이다. 옥개석의 밑면은 2단의 낮은 받침을 새겼고 절수구가 남아 있다. 상륜부에는 8엽의 단판연화문을 돌렸고 그 위에 2단으로 상륜 받침을 두었다. 보주의 봉은 없어졌고 보주대만 남았다. 석등 앞으로는 배례석이 놓여있는데 윗면 중앙의 연화문은 2중 원으로 되어있고 주변에 8엽의 잎을 돌렸다. 통일신라 이후의 일반형에 속하는 배례석이라 할 수 있으며, 석재의 재질이나 형식 등이 석등과 같은 시기로 추정된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 외에 또 다른 석등 2기가 더 있다. 하나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동쪽 언덕의 삼층석탑 앞에 있는 석등이고, 다른 하나는 취현암(醉玄庵) 앞 옥개석과 간주석 파편 일부이다. 신라 하대에는 사찰이 번성하여 건물의 중창은 물론 화엄종이 크게 일어나면서 석등과 같은 조형물이 많이 조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17호로 지정되었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은 전반적으로 장식성이 약화한 간결한 모습이다.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앞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석등으로 상하 비례의 교묘함이나 조각의 정교함에서 석등 중에서도 손꼽히는 걸작으로, 통일신라시대 석등 연구의 중요한 기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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