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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성면 삼남마을자랑비 본문
삼남리는 청성면 남부 중앙에 위치한 고지대 마을로 남쪽 방면에서 청성면으로 들어오는 관문으로 교통 요지이다.
면적은 4.99㎢,이다. 동쪽은 영동군 용산면과 소서리, 서쪽은 양저리와 묘금리, 남쪽은 조천리, 북쪽은 장수리와 궁촌리와 인접하고 있다. 원래 조선시대에 『여지도서』 기록에 청산현 남면 조분리에 속하였고, 대한제국 때 청산군 남면 조분리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청산군을 옥천군에 통합시키고 삼거동三巨洞과 차남리車南里를 합쳐 처음 삼남리三南里를 신설하고 옥천군 청남면으로 편입하였다. 이후 1929년 청성면에 편입하였다.
삼남리는 삼거리와 차남리를 합할때 삼거리의 석삼三 자와 차남리의 남녘 남南 자를 한자씩 따서 삼남리라고 하였다.
삼남리 마을표지석이 보이는 길 건너편에 자연암위에 화강암을 세워 마을자랑비를 만들었습니다. 마을입구에는 목장승 등을 깍아서 장승거리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자연마을 지명으로는 다음과 같다.
- 삼거리: 마을 남서쪽에 있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간마을로 영동군 용산면, 심 천면과 청성면 소재지로 가는 세 갈래 길에 위치한다.
- 수레나미(車南, 순냄이): 밀개봉 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로 삼남리의 중심마을이다.
- 차돌배기: 삼거리 앞 골짜기에 있는 산으로 차돌이 많았다.
- 밀개봉(거마산, 차마산): 수레나미 뒷산 지형이 고무래 즉 밀개 같다.
- 장승배기: 남대문고개 너머 남쪽 지방도가 지나는 마을로 차남마을 동구 밖이라서 옛 날 이곳에 장승백이가 있었다.
- 장승백이들: 장승백이에서 북쪽 들이다.
- 남대문고개: 남쪽에서 청산 읍내로 들어오는 관문이며 궁촌재라 한다. 삼남리 북쪽 궁촌리와 경계지 고개로 웃대문, 가운데 대문, 아랫대문이라 하여 고개 셋이 차례로 잇달아 있다.
- 낡은여들: 차남리 마을회관 뒷들로 주로 밭지대이다.
- 거머니골: 차남 뒤편 북쪽 골이다.
- 구엉마들: 차남리 앞들 남쪽 들이다.
- 봉미소골: 봉미소들에서 시작하는 작은 골이다.
- 감나무골: 봉미소골 동편에 북으로 난 골로 감나무가 있어 생겼다.
- 솔개실골: 차남 동쪽 감나무골 동편에 있는 골이다.
- 방간티: 솔재실골 맞은편 남쪽에 있는 골로 남쪽으로 가는 재가 있었다.
- 꼬장백이들: 차남에서 동쪽 골짜기이며 솔재실골 입구 동쪽 들이다.
- 다나미골: 꼬장백이들 동편의 동쪽 아래 골이다.
- 누렁이골: 꼬장백이들 상단부에서 위로 난 골이다.
- 수렁이골: 꼬장박이들 동편 골 중에서 누렁이골과 다나미골 사이의 더 깊숙한 동쪽 골이다.
- 비끼실들: 차남 앞산 너머의 들로 조분이 초입 계단식 들판이다.
- 개통골: 비끼실들에서 남쪽 골이다.
- 집너머골: 개통골과 연이은 남서로 고부라진 골로 밭지대다.
- 동마골: 장승백이 남동쪽의 작은 골이다.
- 앞실골: 비끼실들 상단부에 연이은 곳에서 북쪽 작은 골이다.
- 양재골: 앞실골에 동편길 따라 오다 남쪽길에서 동남쪽 골이다.
- 달바골: 방재골 아래서 동남쪽 골로 영동 용산면 장군재골로 넘어 간다.
- 가래골: 비끼실들 상단부에서 남동쪽 골로 농기구 가래처럼 생겼다.
삼남리는 원래 청산현 남면 조분리에 속해있던 마을이 후에 삼거리와 차남을 합하여 삼남리라 이름 지어 오늘에 이른다.
1891년 기록에서 청산현 남면 조분리에 114호가 거주하였다고 되어 있다. 그때의 조분리는 지금의 삼남, 조분, 도천 등이다. 그 후 1914년 행정구역 일제 조정 때 옥천군 청남면에 소속되어 삼남리가 되었다. 1929년 행정구역의 통폐합으로 청남, 청서 두면이 없어지고 청성면이 되면서 이에 속하게 되었다.
삼남리라 부르게 된 것은 삼거리와 차남을 합할 때 삼거리(三巨里)의 삼(三)자와 차남(車南)의 남(南)을 한자씩 취하여 삼남리가 되었다. 1894년 9월 최시형교주의 납접동학군이 삼남리와 조천리 사이 기포골에서 기포한 동학농민군의 출발점으로 추정된다.
삼거리는 길목이 세 갈래 길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고 차남은 순냄이(수레나미)를 한자화 하면서 차남이라 부르게 되었다.
청성면 삼남리는 다른 것이라면 몰라도 물이라면 군내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그런 마을이다. 해발이 비교적 높은 산간마을이면서도 옛부터 물이 좋기로 이름이 나있어 벼농사 짓는데 그리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아도 되는 ’살기 좋은’ 마을이 이곳이다.
1980년 전국최초로 개발된 유명한 게르마늄약수만 해도 그렇지만 옛날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오는 약수가 있었다. 「불분디기」약수라고 전해지는 이 약샘(겨울에도 얼지 않고 여름에는 손이 시리다고 함)은 고염나무를 받치고 있는 바위 밑에서 나오는 물로 어느 시대인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조상 대대로 ’나환자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고는 깨끗이 나았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자연마을은 수레나미(차남, 순냄이), 삼거리가 있으며, 장승배기가 있고 차돌배기, 남대문고개, 거마산(거무산, 밀개봉) 등의 지명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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