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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면 용촌리 풍경(安內面 龍村里 風景) 본문
용촌리는 산촌마을로 의병장 조헌 이 임진왜란 때 후율정사를 짓고 호국의 의지를 닦던 유서 깊은 마을이다. 면적은 3.86㎢이다. 안내면에서 북서부에 위치한다. 동쪽은 월외리, 남쪽은 도율리와 답양리, 서쪽은 보은군 회남면 은운리, 북쪽은 보은군 회남면 노성리와 인접한다. 가산천이 북쪽에서 새터말, 용수말, 솔맥이를 거쳐 서쪽 답양리로 흐른다.
용촌리는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의하면 가산리佳山里에 속하였던 마을이다. 1830년대 『옥천읍지』에서는 옥천 관문에서 35리 떨어져 있다고 기록 하였고, 1891년 『신묘장적』에도 가산리에 속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가산리를 용촌리와 답양리의 2개 리로 분리하여 용촌리가 처음 신설되었다.
용촌리를 흐르는 가산천에 깊은 용소龍沼가 있어 그에 연유하여 용소말이라 불러서 마을 이름을 용촌리龍村里라 하였다. 용소말을 용수말로 부른다.용촌리 단일이며 자연마을은 용수말, 새터말(신대), 도래밤 티, 솔맥이가 있고 문화유적으로 조헌이 천기를 보았던 유 상지석과 중봉약수, 후율정사터, 인봉 전승업의 인봉정사터 등이 남아있다. 가산박물관이 있고 용촌보건진료소가 있다.벼농사를 짓고 잡곡을 생산한다. 용촌국민학교는 폐교되었다.
- 용수말(龍沼말): 옛 용촌초등학교 북쪽 마을로 용촌리의 중심마을이다. 이곳 가산천을 흐르는 물이 연못처럼 깊어 용소말이라 하다 용수말로 변화되었다.
- 도래밤티: 용수말 동쪽 깊은 골에 있는 마을로 의병장 조헌이 마을 위쪽에 후율정사 를 짓고 살았다.
- 새터말: 새로 생긴 마을로 옛 용촌초등학교 북쪽 보은 노성리와 접경마을이다.
- 가산천佳山川: 용촌리 북쪽 보은 수한면 노성산에서 발원하여 용촌리, 답양리를 거쳐 보은 회남면 은운리로 흘러 대청호로 들어가는 아름다운 하천이다.
- 잔디밭: 새터말 북쪽에서 북서로 난 넓은 골이다.
- 빈정들: 가산천이 흐르는 새터말 북쪽 들이다.
- 중봉약수重峰藥水: 도래밤티 마을 입구에 있는 의병장 조헌이 즐겨 마시던 샘물로 새롭 게 단장하고 옥천향토사연구회에서 표지석을 세웠다.
- 율원구곡栗園九曲: 후율정사에서 중봉 조헌이 옥천의 아름다운 경승 아홉 곳을 노래한 시가이다. 용촌리 일대 풍광을 서사하며 서대산부터 서화천과 금강이 합치는 군북면 용호리까지 절경을 읊었다.
- 솔목이(솔맥이): ‘솔’은 옛말에 작다, 좁다는 의미가 있고 ‘목’은 곳이나 장소를 뜻한다. 이를 통해 이 마을 아래편 가산천 협곡이 좁다하여 솔목이라 불렀을것으로 추정된다. 구 용촌국민학교에서 남쪽으로 1㎞쯤 떨어져 있고 가산박물관이 있다.
- 큰골: 솔목이 남쪽 가산천 건너편 음지에 있는 커다란 골이다.
- 쇠기번드골: 솔목이 남쪽 가산천 변 들로 아래편에 화골이 있다.
- 감자박골: 화골 위편에서 가산천 동남쪽 골로 감자가 많이 난다.
- 망기대望氣臺: 옛 용촌초등학교 북편에 중봉 조헌이 하늘의 천기를 보던 유상지석, 관천석을 말한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용촌 고갯길을 넘으면 먼 발치 아래로 자연부락이 내려다 보이고 부락 입구에서는 작은 건물 하나를 발견해 낼 수 있다. 건물 앞 앙상한 가지의 플라타너스 위에는 빈 까치집이 보이고 국기봉 위에서는 까치가 짖어대고 있다. 총 학생수 66명,교사 5명의 가족적 분위기,담장이 없이 생울타리로 경계를 표시한 공원화학외 이곳이 30년 전통에 6백12명의 졸업생을 배출한 용촌국민학교이다.
1960년 안내국민학교 용촌분교로 설립된 이래 65년 3월1일 용촌국민학교로 승격 되었고 그해 3월17일 용촌 국민학교로 개교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해 2월18일 제24회 졸업생을 보내며 학생수의 격감으로 인하여 안내국민학교 용촌분교로 격하, 지금은 교장도 교감도 없이 박진하(44) 분교장을 포함 5명의 교직원이 함께 근무하고 있다.
그래도 교직원 모두는 벽지학교의 순박한 학생들을 대하며 한사람이라도 가르치겠다는 열의로 열심들이다. 『체벌요? 이곳에서는 그럴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모두가 형제처럼 집안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으며 학생들도 형,누나나 마찬가진걸요.』
1~6학년까지 있지만 교실은 5개뿐이다. 학생수가 적은 2,3학년이 한 교실에서 복식수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뜻한 날씨면 3학년 수업에 방해되지 않도록 2학년들을 야외로 보내 읽기 공부를 시키기도 합니다.』담임 조필기(36)씨는 이렇게 말하며『복식수업으로 학력 향상에 지장이 초래 되지 않을까 하는 주민들의 우려는 정반대입니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일이 많습니다. 3학년들은 복습이 되고요,또 2학년에게는 예습이 되는 시간도 있으니까요』라고 한다.
소인수 학급운영의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4학년 교실을 들어서자 난로가에 8개의 책상이 원형으로 배치되고 그 앞에는 교탁대신 교수 학습 대가 학생들의 책상과 똑같은 높이로 배치되어 있었다. 개인별 사물함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고 자료 및 독서대가 교실마다 있었는데 한쪽으로는 실험대가 비치,학생과 교사들은 달리 이동하지 않고도 그 자리에서 모든 학습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르르 안개바람이 잠이 들었다./그 넓은 하늘이 옹달샘 속에 담뿍 잠겼다./옹달샘 속에 잠긴 하늘은 작은 들판/나는 양떼를 몰고가는 어린 목동이 된다.-
4학년 김미숙양의 시화 작품을 비롯, 학급 어린이들의 솜씨가 교실 뒷쪽에 가득 걸려 있었다. 산으로 둘러 싸인 채 온통 자연속에 살아가는 어린이들의 티없는 동심이.
방학이라 학생들이 없이 텅빈 운동장가에는 야외학습원이 있었다. 기상 실험 및 관측을 위한 백엽상과 풍향계 풍속계 지중온도계 해시계 및 암석표본과 화산모형 등이 무궁화 동산을 사이에 두고 아담하게 갖추어져 있었다.
『한때는 2백여명이 넘는 학생이 있었지요. 기계체조하면 이 학교가 유명했었습니다. 사법고시에 합격한 졸업생도 있고요』한 교사는 과거를 회상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점심 시간이면 음식점이 없는 이 곳에선 선생님들이 돌아가며 밥을 지어 식사를 한다.
보은군 회남면과 수안면 그리고 안내면 등 3개면 4개리 학생들의 보금자리 용촌분고 나오는 길에도 까치는 계속 짖어대고 있었다. 출처 : 옥천신문(http://www.okinews.com)오래전 폐교되기전의 풍경을 옥천신문에서 다른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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