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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성면 귀래리 신성휴묘비(琅城面 歸來里 申聖休墓碑)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낭성면 귀래리 신성휴묘비(琅城面 歸來里 申聖休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11. 6. 09:44

 

신성휴는 충북 청주(淸州) 사람이다.
1919년 3월 30일 청주군 미원면(米院面) 장터 사가리(四街里)에서 1,000여명의 장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다 주동자 신경술(申敬述)이 일경에 연행되자 헌병주재소로 몰려가서 구속자 석방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다가 피체되었다.
이해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아 공소하였으나 6월 23일 경성복심법원과 8월 16일 고등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원래의 신성휴의 무덤은 지금 이곳 단재신채호선생의 무덤이 있는 낭성면 귀래리 고드미마을에 있었는데 그 후 공적조사로 애국지사로 대통령표창이 추서되면서 대전 현충원 애국지사 제 3묘역으로 이징되어 이 곳에는 비석만이 자리를 하고 있다. 비석의 전면에는 애국지사고령신공휘성휴지묘(愛國志士高靈申公諱聖休之墓)라고 적혀있으며 대전현충원 애국지사 3묘역으로 이장된 사실의 작은빗돌을 붙여 놓았습니다.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의 공적조사에 의하면 1919. 3. 30 忠北 淸州郡 米院面 장터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하다가 주동자인 申敬朮이 米院헌병주재소로 연행되자 1,000여명의 시위군중을 주재소 앞으로 인도하여 독립만세를 연창하며 시위하다 피체되어 징역 6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신성휴의 묘비는 단재영당 옆길로 오르며 위치하고 있습니다.
묘역 가까이 단재영당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