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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원면 옥화리 추월정(米院面 玉花里 秋月亭) 본문
조선 광해군 1년(1609)에 서계(西溪) 이득윤(李得胤,1553~1630)이 세운 경주이씨의 정자이다. 지금의 정자는 광무 2년(1898)에 중건하고 1985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간 측면 1간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내부는 통칸 마루를 깔고 난간을 둘렀으며, 광무 2년(1898)에 화산(花山) 권용규(權容圭)가 쓴 "추월정(秋月亭)"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고종 20년(1883)에 덕은(德殷) 송근수(宋近洙)가 짓고 권용규가 지은 "추월정기(秋月亭記)"가 있다.
상당 동쪽에 학당산이 있어 꾸불꾸불 몇리를 이어져 옥화대가 되었다. 뭇 봉우리는 늘어섰고 계곡은 말게 휘돌며 초목은 울창하고 골짜기는 깊숙하니 곧 하나의 승경지(勝景地)라 서계 이선생이 처음 풀을 베어 거처하니 무이고사(武夷故事)를 본받아 구곡이라 이름 붙이고 오곡에 정사를 지어 그 당을 춘풍(春風)이라 하고 그 마루를 추월(秋月)이라 하였다. 대저 산수와 풍월은 현인군자와 함께 하는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현인군자와 함께 한 이후에 곧 산수풍월의 흥취가 있게된다. 옛 성인은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智者樂水)라 말씀 하시었고 황노직(黃老直)은 도가 있는 기미를 광풍제월(光風霽月)이라 칭송하였으며 회옹(晦瓮) 주희선생은 마음을 전하는 오묘함을 읊어 추월한수(秋月寒水)라 하였다. 그러나 비록 산수의 아름다움과 풍월의 뛰어남이 있다고 한들 어찌 모든 사람들이 그 줄거움을 우의하고 그 흥취를 알겠는가? 선생은 역학에 깊어 시들고 자라는 변화를 보거나 차고 기우는 이치를 완성하여 틈이나면 수연히 지팡이를 짚고 신발을 끌며 하봉(霞峯)과 오담(鰲潭)사이를 노닐 때 한가을 보름을 맞아 내리던 비가 개이고 보름달이 상쾌하고 만물이 소융할 즈음 염계 주돈이 선생의 광풍제월의 흥취를 얻고 천년전 성현의 마음을 구하니 이 것이 당일로 명명한 뜻이다.고을의 선비들이 선생이 사시던 곳에 사우를 세우고 추향하여 따로 사우 동쪽 계곡가에 작은 정자를 세워 추월이라 편액하니 오솔길이 울창하고 구름이 모여든다. 전사의 중건을 모의하여 옛 터에 새로 세우니 일찌기 심재(心齋) 송선생의 기문이 있는데도 이제 또한 나에게 기문을 부탁하였다. 내가 그 세우는 뜻을 칭송하며 마침내 위와 같이 적는다. 오호라 정신이 깃들다 훼철되었으나 추월정 하나만이 유독 고반(考盤)과 유촉(遺躅)을 지키고 있으니 마땅히 후인들은 더욱 삼가 보호하여 훼손됨이 없어야 할것이다. 청컨데 이로써 제군들에게 당부하고자 한다.[추월정 중수기(秋月亭 重修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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