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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면 구암리 김양호 진주강씨 쌍정려(南二面 九岩里 金養浩 晉州姜氏 雙旌閭) 본문

통합청주시/서원구(西原區)

남이면 구암리 김양호 진주강씨 쌍정려(南二面 九岩里 金養浩 晉州姜氏 雙旌閭)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1. 12. 11. 17:17

김양호 부부의 정효각은 조선 고종26년(1889)청주목 남차이면 안대리 지금의 남이면 구암리 안대마을에 부호군(副護軍)을 지낸 양암당(養巖堂) 김양호(1776-1879)와 그 부인인 진주강씨 부부의 효행을 기리어 세운 정려각 입니다. 지금의 정효각은 1935년에 증건하고 1989년애 보수한 건물로 겹처마 팔작지붕에 목조기와집이며 사면을 낮은 막돌로 담을 만들어 둘렀으며 홍살로 막고 작은 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김양호와 그의 부인인 진주강씨를 기리는 쌍정지비가 정효각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경주김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주위는 정려각은 철재 울타리로 쌍정지비는 석재울타리를 두르고 있습니다.

 

김양호는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성택(聖澤), 호는 양암당(養岩堂)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수대리(秀垈里) 출신이다. 좌승지(左承旨) 김원중(金元仲)의 손자이자 호조참판 김취삼(金就參)의 아들이다. 김양호는 어려서부터 총명하였으며, 또한 무예에도 출중하였다. 그러나 아버지를 일찍 여읜 탓에 집안 형편은 매우 어려웠다. 어머니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삯바느질을 하며 양호를 길렀다. 그러면서도 양호에게는 자신의 노고를 전혀 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마을에 역병이 돌기 시작했고, 양호의 어머니가 병에 걸려 눕게되었다.

그러나 의원을 불러 치료할 만한 형편이 못되었다. 이에 양호는 자신의 허벅지살을 도려내어(할고) 어머니를 봉양함으로 5개월여를 더 연명하셨다.양호는 이후 급제하여 청천현감(淸川縣監)이 된다. 그리고 호조참판(戶曹參判), 동지의금부사(同知義禁府事) 등을 거쳐 고종 17년(1879) 타계한다.

 

그의 부인인 진주강씨 또한 김양호와 마찬가지로 시어머니 봉양에 열심을 내었으며  시어머니의 뜻을 추호도 어기는 적이 없었으며 철에 맞는 의복절차와 구미에 맞는 음식조달에 정성을 다하는 한편 별식이 있으면 정결히 보관하고 때에 맞추어 올렸다. 노환으로 가동이 어려을 때는 부부교대로 누이고 이르키고 때에 따라 등에 업고 뫼시며 잠시도 어머니곁을 떠나지 않았다, 뫼신지  3년   김양호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예의범절로 어머니의 상을 치루었으며 여막을 짓고 시묘살이를 하였다 시묘살이를 하는 동안 밤으로는 범이 나타나 호위를 해주었다.

 

김양호가 104세에 운명을 달리하고 9년후 지역에 유림에서 유장으로 여러번 정효를 진정함과 때를 같이하여 김양호의 아들인 정태와 정례 형제가 상경하여 임금님의 행차앞에 엎드려 상소하니 임금님이 그 자리에서 정려를 명하였다고 한다.

 

정효각 안에는 효자숭정대부행동지중추부사김양호 효부증정경부인진주강씨쌍정지려(孝子崇政大夫行同知中樞府事金養浩 孝婦贈貞敬夫人晋州姜氏雙旌之閭) 라고 쓰인 편액을 걸어 놓았으며 정려일은 숭정기원후오기축2월(崇禎紀元後五己丑2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