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강릉시립박물관 부사 신경진선정비(江陵市立博物館 府使 辛慶晋淸德不忘碑) 본문

전국방방곡곡/강릉(江陵)

강릉시립박물관 부사 신경진선정비(江陵市立博物館 府使 辛慶晋淸德不忘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2. 9. 1. 07:52

 

 

강릉시립박물관 야외전시장에 자리하고 있는 조선조 선조시절에 강릉부사를 지낸 신경진의 불망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부사 신공경진청덕불망비(府使辛公慶晋淸德不忘碑)라고 각자되어 있습니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석의 크기는 높이 108.7 너비46.5 두께 14.7센티입니다.

 

 

신경진(1554년(명종 9년) ~ 1619년(광해군 11년)은 조선의 문신. 자는 용석(用錫), 본관은 영월(寧越). 응시(應時)의 아들. 이이(李珥)의 문인(門人). 1584년(선조 17) 문과(文科)에 급제, 승문원(承文院)ㆍ사국(史局)의 벼슬을 지내고, 1591년 병조 좌랑(兵曹佐郞)으로 진주사(陳奏使) 한응인(韓應寅)의 서장관(書狀官)이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했다. 이 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지평(持平)에 올라 왕을 평양(平攘)에 호종(扈從), 그 곳에서 체찰사(體察使) 유성룡(柳成龍) 휘하에서 종사관(從事官)이 되고, 난이 끝난 후 강릉 부사(江陵府使)ㆍ사간(司諫)을 거쳐 이조참의(吏曹參議)ㆍ성주(星州)와 충주(忠州)의 목사(牧使)를 역임했다. 1609년(광해군 1) 경상도 관찰사에 승진, 다시 예조 참판을 거쳐 대사헌에 이르렀으나 1612년(광해군 4) 황혁(黃赫)이 화를 입어 처형당할 때 그 사돈인 관계로 파직되었다. 그 후 다시 등용되었으나 사퇴했다. 청백리(淸白吏)에 녹선(錄選).되었다.[네이버 지식백과] 신경진 [辛慶晋] (인명사전, 2002. 1. 10., 인명사전편찬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