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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읍 비상리 변경복효행사적비(內秀邑 飛上里 卞景福孝行事蹟碑)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내수읍 비상리 변경복효행사적비(內秀邑 飛上里 卞景福孝行事蹟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1. 8. 20:13

 

내수읍 비상리에 자리하고 있는 초계인 백음 변경복의 효행사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백음초계변공휘경복효행사적비(栢陰草溪卞公諱景福孝行事蹟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옆으로는 변경복의 효자문과 효자비도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변경복은 조선 중기의 효자(孝子)로 본관 초계. 자 중신(中申).  백음(栢陰). 청주 출생이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편모슬하에서 자란 그는 홀어머니를 생전에 잘 봉양함은 물론 사후에는 시묘(侍墓)와 제사를 드림에 있어 지극한 예를 갖춤으로써 그 효성이 조정에 알려지고 그 향리에 효자정문(孝子旌門)이 세워졌다. 청주의 국계서원(菊溪書院)에 제향되었습니다.변경복(卞景福)의 행실이 옛 강혁(江革)의 효행과 같다고 조정에까지 알려져 1602년(선조 35)에 정려가 내려졌다. 정문(旌門)은 내수읍 비홍리 앞산에 세워졌고, 그 사적은 『삼강록(三綱錄)』에 등재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비상리에 있는 국계서원(菊溪書院)에 제향되어 있다.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묘표가 전한다.


변경복의 묘갈명 (naver.com)

 

변경복

비홍리(飛泓里)는 청주(淸州)의 치소(治所) 북쪽 30리에 있다. 독실한 행실이 있는 사람인 변경복이 살았었는데, 뒤에 정려(旌閭)가 세워지자 그곳을 지나는 자는 경의를 표하고 묻지 않아도 저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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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경복의 자는 중신(仲申)이며, 호는 백음(栢陰)이며, 본관은 초계(草溪)다. 중종33년(1538), 북일면 비홍에서 출생하여 평생 학문에만 정진했다. 582 / 제14편 구비전승 변경복은 어릴 때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는데, 8세에 부친상을 당하였다. 
나이가 비록 어리지만 슬퍼하는 것이 어른과 같았다. 경복이 수척해지자 어머니는 그를 불쌍히 여겨 고기를 먹이려 했다. 
이에 변경복은, “상중에는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예가 아닙니까?”하고 그것을 마다했다.임란 당시에는 노모를 업고 피난하여 화를 면했고, 모친이 세상을 떠나자 삼 년간 움막을 짓고 곁에서 살았다.변경복은 법도가 엄하여 가례에 의해 제사지내고 손수 제사에 쓸 음식을 장만하기도 했다. 또 상중에는 늘 국만을 먹고 상기(喪期)를 마쳤다.92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는데 선조 때에 효행이 알려져 정문이 내려졌고 국계서원(菊溪書院)에 배향되었다.- 청원군 북일면 전승, 󰡔청원군 전설지󰡕(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