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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읍 국동리 김해김씨열녀각(內秀邑 菊洞里 金海金氏㤠女閣) 본문

통합청주시/청원구(淸原區)

내수읍 국동리 김해김씨열녀각(內秀邑 菊洞里 金海金氏㤠女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3. 1. 9. 16:26

 

국동리는 경주김씨 판도판서공파의 세거지입니다.이 마을은 고려말 판도판서를 역임한 김장유를 파조로 한다.판도판서공파10대손이며 충암공의 4대손인 증동지중추부사 김진현(1618~1695)이 이거하여 공의 15대손 까지 세거하고 있다.

 

김인석의 처 김해김씨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고종31년(1894)에 국동리 마을입구에 세운 정려문입니다. 국동리 마을입구인 정류장 바로뒤에 위치하고 있어 접근성도 좋습니다. 정려와 함께 묘지도 자리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정려각은 1980년에 중수한 건물로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입니다. 사면은 홍살로 막았으며 안에는 학생김인석지처김해김씨지려(學生金仁錫之妻金海金氏之閭)라고 적혀있으며 고종31년 갑오명정이라는 편액과 송덕문이 걸려있습니다. 송덕문은 김홍윤이 서하고 밀양인 이원영이 찬하였습니다.열녀각 앞에는 안내석이 서있습니다.

 

 

김해김씨는 김인석의 처로 경주김씨 문중으로 출가하여 남편과의 금슬이 좋아 주위 모두가 부러워하였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나 할까? 결혼한지 일년이 못되어 남편이 병을 얻어 자리에 눕게 되자 김해김씨는 밤낮으로 남편의 쾌유를 위해 하늘에 기도하는 한편 한편으로는 백방을 다니며 약을 구하여 남편의 병구완을 하였다.그러나 김해김씨의 열심에도 불구하고 남편의 병은 더욱 더 깊어가자 김해김씨는 자신의 손가락을 깨물어 피를 내어 병중의 남편에 입에 흘려넣음(斷指注血)으로 소생토록 하였다. 김해김씨의 병구완과 단지주혈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부인은 슬픔을 가누지 못하고 지아비를 따라가는것이 아내의 도리라 하고는 자신의 허리띠를 풀어 목을 매어 남편의 뒤를 따랐다. 이러한 지아비를 향한 김해김씨의 행적이 원근에 알려지자 조정에서는 고종임금께서 친히 정려를 명하여 그의 정절을 후세에 영원히 전하도록 하였다.

 

 

무덤에는 후대에 후손들에 의하여 비석이 새로 세워지고 안내판도 바뀌어 주위를 잘관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