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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의면 구룡리 오연신도비(文義面 九龍里 吳蓮神道碑) 본문
신도비의 건립시기는 단기4288년(서기 1955년)에 후손들의 의해서 세워졌다. 구사리 마을입구 솔숲안에 자리하고 있습니다.구사리는 낙안오씨 집성촌으로 석성군 오연의 후손들로 누대를 이어 정착하여 거주한 곳이다.또한 열망골과 오룡동은 경주최씨 집성촌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낙안오씨의 낙안(樂安)은 전라남도(全羅南道) 승주군(昇州郡)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본래는 백제시대의 분차군(分嵯郡 : 分 郡이라고도 한다)인데, 통일신라의 경덕왕 때 분령군(分嶺郡)으로 개명하였으며, 고려시대에 낙안군으로 개칭하여 나주(羅州)에 속하게 하였다. 1172년(명종 2)에 현(縣)으로 강등되었다가 후에 군(郡)으로 승격하였다. 조선시대에도 현으로 강등되기도 하고 군으로 승격하기도 하였느데, 선조 때 군(郡)이 되었다가 1908년(융희 2)에 순천군(順天郡)과 보성군(寶城郡 두 군데 갈라서 편입되었다.
낙안오씨(樂安吳氏)의 시조(始祖) 오사룡(吳士龍)은 고려(高麗) 때 삼사 좌윤(三司左尹)을 지내고 외적(外敵)을 토벌한 공으로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고 낙안군(樂安君)에 봉해졌다. 그리하여 후손(後孫)들은 낙안(樂安)을 본관(本貫)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으며, 8세손 척지(陟之)가 조선(朝鮮) 세종(世宗) 때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한 뒤 경연관(經筵官)을 역임하여 가세(家勢)를 일으켰다.
가문의 인물을 살펴보면 척지(陟之)의 아들 백안(伯顔)이 세조(世祖) 때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이조 참조(吏曹參判)·홍문관 대제학(弘文館大提學) 등을 역임하였으며, 손자 원로(元老)가 통훈대부(通訓大夫)에 올라 광주목(光州牧)의 교수(敎授)를 지냈다. 이외에도 정헌대부(正憲大夫)에 올라 병조 판서(兵曹判書)에 추증된 철검(哲儉),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던 경홍(景弘)·경의(景毅) 형제와 희기(喜麒), 그리고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공을 세워 호성공신(扈聖功臣)으로 석성군(石城君)에 봉해진 연(連)이 있다.
무신(武臣)으로는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훈련 참군(訓練參軍)을 지낸 흡(洽)과 역시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거쳐 통훈대부(通訓大夫)로 칠원 현감을 역임한 시준(時俊), 가선대부(嘉善大夫)로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를 역임한 덕근(德根)이 가문을 빛냈다.
막돌을 이용하여 담을 둘렀으며 비각안에는 후손들에 의하여 세워진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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