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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백면 사양리 사양영당(文白面 思陽里 思陽影堂) 본문
문백면 사양6길 15-6에 위치한 사양영당은 고려 명종 때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던 이공승李公升의 영정을 봉안한 사당이다.
1726년영조 2에 처음 건립됐으며 현재의 건물은 1971년에 보수했다. 사당 본전과 외삼문과 재실을 갖추고 있으며 입구의 홍살문 오른쪽 및 사당 오른쪽에 여러 개의 청주 이씨 비석들이 있다.
이공승1099-1183의 본관은 청주로 청주에서 태어났다. 공과 사가 분명해 첫째가 공이요, 둘째가 개인 일이라는 생각으로 평생을 살았다고 한다. 고려 인종 때 문과에 급제했으며 1148년의종 2 39세에 전중시어사로 금나라에 다녀온 이후 동지추밀원사, 이부상서 등을 거쳐 참지정시를 역임했다.
그는 중국의 사신으로 갔다가 받은 크고 작은 선물을 모두 물리쳐 청렴한 인물로 정평이 나있다. 당시 사절수행의 군사에게 은 1근씩을 거두는 게 상례였으나 전혀 거두지 않았다고 전해져 청렴하고 고결한 덕행이 더욱 드러났다.하루는 의종 임금이 한가위에 달구경을 했는데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의왕은 “오늘 밤의 밝은 달은 마치 공승의 가슴속 같아 한 점의 티끌이 없구나”라고 했다.이공승은 벼슬을 그만두고는 진천으로 낙향해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사후 중서시랑평장사에 추증됐으며 문정文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영당은 정면 3칸, 옆면 1칸 반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빈칸의 앞퇴를 뒀으며 ‘사양영당思陽影堂’이라는 편액을 걸었다.
사양영당은 진천군의 기관장, 유림 및 후손들이 참석해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이공승의 추모제를 봉행하고 있다.이공승 같은 청백리는 당시에도 그랬겠지만 현대의 공직사회에도 경종을 울릴만한 인물로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당시에 중국 사신으로 갔다가 받은 선물을 모두 물리쳤다고 하는데 사람인 이상 이공승처럼 청렴하게 살기란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현재는 부정청탁금지법인 김영란 법이 제정되는 등 공직자의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를 금지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하지만 사람 사이의 정이 메말라 개인주의화 되어가는 세상은 너무도 삭막하기까지 하다. 청백리의 정신은 이어가야겠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인간관계는 법 보다는 신뢰를 통해 더 공고히 해 나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청주 이씨의 세거지는 청주시 흥덕구 송절동 일원에 발견된 묘역 4기를 통해 청주의 세거 사실을 증명하고 있지만 현재 남아있는 집성촌은 없으나 문백면 사양리에는 세거지가 있다.[진천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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