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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교동리정광제효자문(沃川邑 校洞里鄭匡濟孝子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옥천읍 교동리정광제효자문(沃川邑 校洞里鄭匡濟孝子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5. 9. 18:31

 

 

 

 

 

 

 

 

 

 

 

 

 

 

 

 

 

 

 

 

 

 

 

 

 

 

 

 

 

 

 

 

 

 

 

옥천읍 교동리에 위치한

영조30(1754년)에 세운 정광제의 효자문이다

정광제(鄭匡濟)에 대하여
1688년(숙종 14)∼미상.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정숙(正叔). 상길(相吉)의 아들이다.
1717년(숙종 43) 온양(溫陽)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문한관을 거쳐, 1725년(영조 1)
병조정랑에 올랐다. 같은해 장령으로 재결(災結)에 따른 수령의 부정 및 백골징포(白骨徵布)의 시정을 건의하였다. 이어서 정언·장령·필선 등을 번갈아 역임하다가 1732년 국상(國喪)에 불참하여 파직되고, 불서용(不敍用)의 처벌을 받았다.
그뒤
필선으로 재기용되어 헌납·장령을 거쳐 1747년 우부승지·승지에 임용되었고, 이어 동지의금부사가 되었다.

서용(敍用)- 죄를 지어 면관(免官)되었던 사람을 다시 벼슬자리에 등용함.

필선(弼善) -조선시대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사품(正四品) 관직으로 정원은 1원이다.

세자의 교육을 담당한 기구는 고려시대부터 있었으나 필선이라는 관직은 공양왕(恭讓王) 때 서연(書筵) 기구를 정비하면서 처음 만들었다. 이때는 4품관으로 좌·우 2원을 두었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조(太祖) 즉위 때의 관제에서도 좌·우필선(左右弼善: 正四品)을 두었으나 1461년(세조 7) 5월에 1원으로 줄여 필선으로 했고, 이것이 경국대전에서 법제화되었다. 초기에는 사헌부 집의(執義: 從三品)나 사간원 사간(司諫: 從三品)이, 세종 때는 집현전 관원이 겸임하기도 했으나 경국대전 이후로는 바로 위의 관원인 보덕(輔德: 正三品 堂上) 이상만 겸임관이고 필선은 전임관(專任官)으로 만들었다. 1529년(중종 24) 다시 겸필선(兼弼善: 正四品) 1원을 증원했다. 겸필선은 속대전에 수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