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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천읍 교동리느티나무(沃川邑 校洞里느티나무)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옥천읍 교동리느티나무(沃川邑 校洞里느티나무)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5. 11. 20:53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에 자리한 보호수인 느티나무이다

주위에 볼것으로는 옥천향교와 육영수생가등이 자리하고있다

동리에서 관리하고있다

금줄을 둘렀다 아마 동네에서 제를 올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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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리(校洞里)는 원래 읍내면(邑內面) 향교리(鄕校里)와 고수동리(高樹洞里)에 속해 있던 마을로, 후에 두 마을이 합하여 옥천읍(沃川邑) 교동리가 되어 현재에 이른다.

1739년의 기록을 보면 향교리에 23호, 고수동리에 26호가 살았다고 되어 있다. 1910년 행정구역 전면 조정 때 읍내면과 군남면이 합하여 군내면으로 되면서, 향교리와 고수동리를 합하여 교동리라 하였다.

교동리라 부르게 된 것은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지방의 영재를 기르기 위한 향교(鄕校)를 세웠기 때문이며, 처음에는 향교리라 부르다가 교동리라 하게 되었다. 향교 앞에는 조선시대 충신의 묘역이나 향교 앞에 세워 경건한 마음자세를 가지도록 했던 하마비가 세워져 있다.

자연마을로 교동, 섶바탱이(이곳이 원래 군북면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위치했으므로 나무지게(섶)를 지고 가다 한 번 쉬어간다(바탱이)는 설이 설득력이 있다), 고수골(구읍지역에서 저수지 쪽으로 올려다보면 높게 보이는 곳에 있기 때문에 고수골이라 했다는 설이 설득력 있다)이 있었으나 교동저수지가 축조되면서 고수골은 없어졌다. 또 수북리를 넘는 고개는 나부티재와 나부티샘이 예부터 유명했으며 2007년말 현재 140호 342명이 살고 있다.

교동리에는 또 박정희 전 대통령의 부인으로,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던 육영수 여사가 태어난 생가가 있으며 무너졌던 것을 2008년 복원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육영수 여사 생가 복원사업은 본래 생가가 조선시대 3 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양반가옥 형태를 보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화재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됐으며, 이에 따라 충청북도 문화재로 지정되면서 복원사업이 추진되게 되었다.

교동리 뒤로는 옥천의 진산이라 불리는 마성산이 자리하고 있다. 해마다 정월대보름이면 옥천고을 전체의 안녕을 비는 마조제가 마성산을 바라보며 올려지는 것은 마성산이 옥천의 진산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마을에는 교동저수지가 있어 문정뜰에 농업용수를 대고 있으며, 저수지 입구 옥천어린이집 앞에는 조선시대 옥천군수를 비롯해 옥천을 거쳐 간 많은 관리들의 공적을 알리는 공적비와 송덕비 등이 세워져 있는 비석거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