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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문당리 윤홍주휼빈선심비(淸安面 文塘里 尹弘疇恤貧善心碑) 본문

마음이 벌써 앞서 달립니다.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이 개편된 1914년 전에 괴산군과 통폐합되기 전의 지명인 청안군의 지명을 사용한 비석이 청안면 문당리에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이 비석의 유래와 함께 자세한 해독을 해주신 전 중원대 교수를 지내신 이상주박사님의 카톡메시지를 받고 나름 가슴이 설레기도 했습니다. 이상주 박사님은 충북의 금석문의 선구자이시며 양아록등 많은 집필을 하셨습니다. 바쁜 시간을 내어 길라잡이를 자처해 주신 교수님께 다시 한번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윤홍주 선심비를 만나려면 일단 청안면 문당 1리를 네비에 입력하고 달리면 됩니다.
문당 1리에서 100여 미터 더 올라가면 위의 사진과 같이 오른쪽으로 비닐집하장이 보이며 비닐 집하장 앞으로 칠보산(객골)이라는 표지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농로를 따라 20여 미터 길을 재촉하면 만날 수 있습니다.
정확한 지번은 충북 괴산군 청안면 문당리 산 45-72입니다.
일제 강점기시절에는 이 길이 청안으로 향하는 지름길 이었을 겁니다.지금도 임도가 개설되어 있으며 이 길을 따라가면 질마재를 통하지 않고 칠보재를 너머 작은골을 지나 청안면 효근리를 거쳐 청안읍내로 갈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교통이 편하니 많이 이용하지는 않습니다.

청안군동면압항리윤홍주휼빈선심비( 淸安郡東面鴨項里尹弘疇恤貧善心碑 )라고 적혀 있으며 비석을 세운 날자는 계축사월팔일( 癸丑 四月 八日)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계축년은 일제에 의해 행정구역이 개편되기 전인 1913년입니다.
113년 전 ‘청안군’ 비석 처음 발견 - 충청타임스
113년 전 ‘청안군’ 비석 처음 발견 - 충청타임즈
[충청타임즈] 일제강점기 충북 괴산군과 통폐합하기 전 ‘청안군(淸安郡)’ 지명을 새긴 비석이 처음으로 발견됐다.괴산군 청안면 문당리 도로변 자연 암반 위에 세워져 있는 ‘윤홍주휼빈선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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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군 동면 압항리( 淸安郡東面鴨項里 ) 글자도 선명하니 좋습니다.
압항( 鴨項 )이라 함은 진다리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지형이 오리의 목처럼 생겼다 하여 지어진 이름입니다.
지금도 오리목이라는 지명으로 남아 있습니다.






윤홍주의 선심내역이 적혀 있습니다. 일가들에게 토지를 나누어 주고 동민들의 세금을 대납하여주는 등 많은 선심내역이 음기되어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괴산군내에 많은 비석을 보았다고 했는데 이렇게 지명을 그것도 청안군이라는 지명을 사용한 비석을 처음 접합니다.
확대해서 크게 한 장 기분 좋음에 또 한 장 박아봅니다.

자연석을 이용한 대좌를 만들었습니다.
자연석을 다듬어 비석받침을 만드는 등 나름 공들인 흔적이 지금까지 남아 있습니다.

이 선심비는 일제강점기인 1913년 당시 이 지역의 유지였던 동면 압항리에 거주하던 파평인 윤홍주가 이곳 주민들을 위하여 세금을 대납해 주고 기근시 식량등을 배포해 기근을 면하게 해 준 것에 대한 마을주민들의 화답으로 세운 선심비입니다. 지금은 도로와 조금 벗어난 곳에 서 있지만 일제강점기에는 이 비석이 서 있는 곳이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길이였을 겁니다. 지금도 임도가 개설되어 있으며 고개를 넘으면 질마재를 통하지 않고 청안읍내를 갈 수 있습니다.

햇볕 가득 받아 환한 얼굴을 보여줍니다.
또 하나의 비석이 인터넷 세상으로 나들이를 합니다.
나름 자신의 이름을 나타내고자 하는 여러 비석들을 보았지만 청안군이란 지명을 사용한 비석은 처음 접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뭔데 하며 지나치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하나의 비석을 통하여 그 시대의 아픔이나 또는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지금의 세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또 다른 길을 안내하는 작은 행복의 문이 될 수 있음을 압니다. 처음 접함은 설렘도 있지만 약간의 두려움도 동반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멀어져 가는 이 비석이 우리에게 나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엇일까요? 답은 정해진 것이 아닌 오로지 내가 찾아야 하는 내 마음속에 울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청안면 문당리, 사람들의 왕래 뜸한 이곳을 과연 얼마만큼의 사람이 찾아줄까요? 이 글을 접하고 관심을 가지고 찾아주며 살펴주는 사람이 있다면 이 비석도 나름 행복함을 느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참으로 행복하고 좋은 하루였습니다.

조금은 낯설어하며 고개를 돌리는 비석을 애써 인터넷이라는 세상으로 초대해 봅니다.
이 글로 인해 충북의 문화재에 관심이 있으신 많은 분들이 많은 발걸음을 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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