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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군 운문면 운문사(淸道郡 雲門面 雲門寺) 본문

전국방방곡곡/청도(淸道)

청도군 운문면 운문사(淸道郡 雲門面 雲門寺)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26. 4. 10. 09:45

 

처진 소나무는 간혹 야생상태에서는 보고된바 있으며 소나무가 눌렸을 때 가지가 위로 뻗지 못하여 밑으로 처져 있다가 그대로 굳어진 것은 있으나 이 소나무는 전혀 그러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전형적인 처진 소나무이다. 또한 가지에 많은 지주가 떠받치고 있는데 지주가 없다면 굵은 가지가 땅에 닿았을 것이다. 땅위 2m쯤 에서 줄기가 갈라져 수평 방향으로 고루 뻗어나가 있으며 수령은 약500년으로 추정되고 높이 6m 밑동 둘레가 2.9m 가지는 동8.4m, 서9.2m, 남10.3m, 북10m로 30여평을 뒤덮고 있다.

소나무는 상록 침엽교목으로서 직간성 이지만 사람의 영향을 많이 받은 숲에서는 굽은 줄기를 흔히 볼 수 있으며 잎은 한 다발에 2개가 보통이지만 나무에 따라서는 3개 또는4개의 잎을 다는 것도 있다. 솔방울(암꽃의 모임)은 지난해의 주축 또는 가지의 끝 쪽, 당년생축의 아래에 달리고 과린(果鱗)은70∼100매 정도로 성숙하면 황갈색으로 되며 과린이 스스로 벌어져 종자가 날려 흩어지게 된다.

우리나라 고목들은 많은 삽목 전설이 있는데, 호거산(虎踞山) 운문사 뜰 평탄한곳에 있는 이 나무에도 어느 대사가 지팡이를 꽂아 자랐다는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과 6.25동란 때 수 차례 무리들의 방화로 많은 건물들이 소실되는 피해를 입었어나 이 처진소나무만은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봄이면 막걸리 12말을 12말의 물에 타서 뿌리에 부어주는 행사를 계속하고있고 수형이 매우 아름답고 가지가 처지는 소나무로서는 우리나라 최대의 것이다.

 

만세루는 운문사 경내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건물로 정면 7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집으로 약 150평의 내부공간이 고주없이 7량으로 가구된 대형 목조건물이다. 건물의 형식은 2단의 자연석 기단위에 자연초석을 놓고 원형평주를 세워 창방과 평방을 결구한 뒤 익공을 얹었다. 공포는 이익공으로 초익공 위에 다시 익공과 행공이 ‘十’자로 짜여지고 그 위에 소주두를 놓은 다음 소주두 위에 보와 도리가 결구되어 있다. 주심 사이에 화반 대공을 놓았다. 넓은 우물마루에 천정은 산자를 노출시킨 연등천장으로 고졸한 맛과 함께 시원한 개방감을 주고 있다.

건립시기는 대웅전 수리 시 발견된 기와명문(강희17년:康熙十七年)과 상량문 명문(순치12년:順治十二年)등을 보면 적어도 17세기에는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여러차례 중수되었다. 건물의 용도는 원래 대웅전을 향하여 법회나 설법을 하는 장소였으나, 현재는 대중이 많이 모이는 행사장으로 이용하고 있다.

 

 930년 보양국사(寶壤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오는 길에 서해용왕이 국사를 용궁으로 맞아들여 금빛 비단가사 한 벌 과 용왕의 아들 이목에게 국사를 모시고 가 작갑(鵲岬)에 절을 짓도록 부탁하였다. 이에 국사는 폐사를 일으키려고 호거산(虎踞山) 금수동에서 내려다보니 까치가 땅을 쪼고 있었다. 국사는 용왕이 작갑(鵲岬)이라 한 말이 생각나서 그곳을 파보니 예전의 전돌이 나오는데 이것을 모아 5층탑을 조성하고 절을 세워 작갑사(鵲岬寺)라 했는데 지금은 작갑사(鵲岬寺)의 전탑(塼塔)은 없어졌다. 대웅보전(현毘盧殿)앞에 쌍탑을 건립한 까닭은 대웅전이 위치한 자리의 지세가 전복하기 쉬운 작은배와 같다하여 지세를 누르기 위해 고려때 세웠다 한다.

이 쌍탑의 상층기단(上層基壇)에는 앉아 있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세련되게 조각되어 있으며 한 돌로 된 옥신(屋身)에는 우주(隅柱)가 새겨져 있다. 옥개석(屋蓋石)에는 5단의 받침 층단을 새겼으며 추녀 밑이 수평을 이루어 경쾌하고 날씬한 조형미(造形美)를 보여준다. 상륜부에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가 남아 있고 기단 일부가 새 돌로 보수되었다. 탑의 전체 높이는 5.4m이고 기단의 탱주가 2개이던 것이 위층에서 1개로 줄어들고 표면이 장식된 점으로 보아 9세기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등은 운문사 대웅보전 앞에 위치한 석등으로, 옛 석등 부재에 신재를 추가하여 2기로 만들었던 것을 최근에 옛 석재만을 분리하여 복원한 것이다. 상륜부를 제외하고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부재로 구성되어 있다. 완만하고 균형 잡힌 수직체감이 잘 구현된 석등으로 평가되지만, 한편 화사석의 크기가 왜소하여 부조화를 이룬다. 이는 여러 석등의 부재를 조합한 결과로 판단되므로 이 석등은 원형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대부분의 부재가 통일신라시대의 석등 부재로 구성되어 있고, 9세기 후반 석등 양식을 잘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