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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원남면 문암리 (11)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원남면 문암리에 있는 원남면 18대 면장이었던 서정우의 공적비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원남면장서공정우공적비(遠南面長徐公廷禹功績碑)라고 적혀있습니다. 서정우는 대구인으로 복호에 집성촌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2002년에 문중과 면민일동의 이름으로 세웠습니다. 비석의 후면에는 면장으로의 재직시 이룬 업적을 적어 놓았습니다.
원남면 문암4리(복호)에 위치한 대구인 도암 서병철의 묘소입니다. 복호마을은 백마령고개 바로 밑에 자리한 마을입니다 행정지명으로는 서당말과 함께 원남면 문암4리에 속하며 대구서씨가 대성으로 있는 마을입니다.복호(伏虎)란 말 그대로 호랑이가 웅크리고 엎드려있는 형상이라는 지명입니다.그런데 이상한것은 호랑이를 뜨솨는 지명일텐데 마을입구에는 근간에 세운 석사자가 있는이유는 무엇일까요? 마을로 통하는 좁은길은 농디구나 소형차의 교행이 불편합니다. 동네의 평균연령이 70세가 넘는등 인구의 고령화로 자꾸만 스러져 가는 모습이 안쓰럽습니다.
원남면 문암리 금법마을초입에 있는 군지정 보호수입니다.느티나무입니다. 느티나무 밑에는 마을주민들의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가 자리하고 있습니다.마을의 재난이나 도둑이 드는것을 방지해 준다고 하는 이야기가 동네주민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문암리 평촌에서 금법너머가는 고갯길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비석의 앞면에는 경주정씨세파비(慶州鄭氏世派碑)라고 쓰여 있으며 경주정씨양경공파에 대한 비문이 있다. 비석의 건립시기는 계유 오월(癸酉 五月)입니다.비석의 상태등으로 보아 1933년경으로 추정됩니다. 조선시대 경주정씨(慶州鄭氏)의 유지(遺地)를 표시하기 위해 세운 비(碑)입니다. 경주정씨 양경공파의 정희계는 1348(고려 충목왕 4)~1396(조선 태조 5)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호는 양성헌(養性軒) 문정공 문하시랑 평장사 진후(珍厚)의 7대손으로 유비창승(有備倉丞) 자초(子楚)의 손자이며 문충공 문하평리 휘(暉)의 아들이다. 어머니는 수첨의정승 화평부원군 김심(金深)의 딸이다. 1348년(충목왕 4) 3월 18일 개경 북안동(開京北安洞 : 현 ..
평촌마을은서당말 서남쪽 벌판에 있는 마을로 마을의 형상이 배를 닮았다 하여 배범(帆)자 범말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마을옆의 선돌모양의 돌로 배의 말뚝을 세워 사람과 돈이 떠도는 것을 막고 있으며 마을에서는 매년 말뚝에 마을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금은 지내지 않는다고 한다.평촌이란 이름은 일제때 마을앞에 평야가 있어 평촌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평촌지형이 풍수지리상 배의 형국이라 재물을 모으면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전설이 있어 떠나감을 예방하는 방법으로 배를 묶어두는 역할을 하는 돌을 세웠다고 한다. 자연석을 다듬어 놓았다. 남성을 상징하는 선돌이다.일명 망두라고도 불린다,
용에 날이란 산은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용의 모습처럼 생겼다고 한다. 머리는 둥글고 뱀등처럼 꾸불꾸불하며 좌,우로 골짜기가 발의 모습에다 꼬리로 가면서 가늘어지게 늘어진 산이다 용이 승천해야 하는데 머리앞에는 팽암정 범바위가 노려보고 있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가로막는 형상이고 꼬리는 둥구바위가 누르고 있어 용이 하늘로 올라가지 못해 자손들이 출세하지 못한다고 하며 꼬리를 누르고 있는 둥구바위를 없애버려야 자손들의 출세길이 열린다는 이야기가 전하고 있다. 수년전에 대구서씨문중회의중 둥구바위를 없애버리자는 안건을 놓고 찬반격론이 있었지만 현시대에 그릇된 생각이며 자연 그대로의 유산을 전설로서 물려주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팽암정비가 서 있는 곳의 바위를 팽가바위라 하고 아래사진의 바위를 마당바위라고 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