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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읍내리 청안사마소(淸安面 邑內里 淸安司馬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청안면 읍내리 청안사마소(淸安面 邑內里 淸安司馬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0. 28. 12:09

 

 

 

 

 

 

 

 

 

 

 

 

 

 

 

 

 

 

 

 

 

 

 

 

 

 

사마소는 생원(生員)과 진사(進士) 즉 사마방에 급제한 자가 50인 이상이 나온 읍에 설치되는데, 그 급제자들이 지방유림으로서 뛰어난 인물이라 하여 후배와 후손들이 제사하며 유학을 강론하고 정치를 의논하던 곳이다.


청안 사마소는 조선 숙종때 청안현의 생원, 진사 50여명이 이미 사마방에 급제하매 숙종 29년(1703)에 사마소를 설치하였다 하며, 청안향교에서 생원시에 합격한 생원과 소과(小科)에 합격한 진사, 그리고 대과(文科)에 급제한 선비를 제명(題名)한 사마재(司馬齋)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마소에는 문과 8인, 생원 40인, 진사 40인, 인물 3인, 음관 2인, 지주 22인을 합하여 115인을 제명하고 춘추로 제향하고 있는데, 1910년 경술국치(庚戌國恥)로 철폐되었다가 광복후 청안지방의 유림들이 1950년 재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현재 독립된 건물로 남아있는 사마소는 옥주사마소(옥천), 경주사마소 등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충청북도 기념물 제 49호로 지정 관리되고있다

 

사마소는

16세기초 중앙의 훈구파들이 장악한 향소(鄕所:留鄕所)에 맞서 사마시(司馬試) 출신의 젊은 유학자들이 향권을 주도하기 위해 만들었다.

처음에는 친목·학문·정치토론 등 향촌의 교화와 지방행정을 보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나, 점차 세력이 커지면서 폐단이 많아졌다.

수령과 향리들이 그들의 세력을 막지 못하고 지방통치에 간섭을 받았다.

또 노비와 토지를 가지고 재산을 늘리거나 백성들을 마구 잡아들여 벌을 주는 등 행패를 부리기도 했다. 〈문헌비고〉 직관고(職官考)에는

1603년(선조 36) 유성룡(柳成龍)의 건의로 없앴다고 하나, 〈인조실록〉에 사마소의 폐단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그뒤에도 계속 남아 있었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