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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정면 지장리 청풍김공효자각(佛頂面 芝莊里 淸風金公孝子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불정면 지장리 청풍김공효자각(佛頂面 芝莊里 淸風金公孝子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1. 12. 16. 07:17

 

 

 

 

 

 

 

 

 

 

 

 

 

 

 

 

 

 

 

 

 

 

 

 

불정면 지장리 세곡에 자리한 청풍김문의 효자각이다.

근래에 세운것으로 효자각옆에는 현대식 재실도 같이 지였다.

이 효자각에 모신 비의 주인공은 청풍인인 김응시의 효자비각이다.

 

 

김응시의 효행기록은 다음과 같다.

 

김응시가 26세 되던 겨울철 아버지의 병환이 위독하여 백방으로 약을 구하던 중 두꺼비가 특효약이란 소리를 듣고

두꺼비를 구하고자 했으나 계절이 겨울이라 두꺼비를 구할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계절에 굴하지 않고 두꺼비를 구하고자 온 산야를 헤매였으나 두꺼비를 구하지 못하였다

이에 하늘을 우러러 통곡하며 기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길에 김응시의 효성에 감동을 하였는지 두꺼비를 구할수있었다

두꺼비를 달여 아버지에게 드리니 아버지의 병환이 씻은듯이 나았다고 한다.

그 후 또 아바지가 병환이 나서 위독하니 자기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는 단지주혈로 아버님의 수명을 연장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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였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니 많은 사람들이 맹종 왕상이 다시 태여났다고 칭찬이 자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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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황주목사 민인백이 나라에 상소하였으나 때가 임진왜란 중이라 임금이 의주로 파천하고 조정에 주재자가 없어 정문포양은 열지를 못하고 교리 윤성임이 지은 조촐한 묘비 한개 뿐이였다.

김응시는 1578년 9월 3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떴다.

 

김응시의 효행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괴산향교와 후손들이 효자비각을 세웠다.

 

맹종과 왕상에 대하여

 

孝子孟宗은  慈母病後에 願食荀菜하거늘 時卽冬天이라
熱夏之荀을 誰能求乎라지만 進於竹田하여 號泣尋荀하더니
堅凍之上에 三荀生焉하도다.

효자 맹종은 어머니께서 병후에 죽순 나물 먹기를 원하거늘 때는 곧 겨울이라
뜨거운 여름의 죽순을 뉘라고 능히 구하랴마는 대나무 밭에 나아가서 울부짖으며 죽순을 찾더니 꽁꽁 얼은 얼음위에 세 개의 죽순이 나왔다 한다.

<解說> 孟宗은 三國時代의 吳나라 강하사람으로 字는 恭武이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정성껏 奉養하고 살았던 孝子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가 많은데다 오랫동안 病席에 누워 있었다.

病이 危篤해진 어머니는 어느 겨울날 竹筍이 먹고 싶다고 말했다.

땅이 꽁꽁 얼어붙은 한겨울에 어디 가서 竹筍을 求할 것인가.

孟宗은 들판을 헤집고 다니다가 눈 위에 주저앉으며 歎息을 했다.
“하느님, 저에게 竹筍을 주시어 어머님의 病患을 낫게 하여 주십시오.”
눈 위에 앉은 채 얼마 동안 歎息을 하고 있는데, 그의 눈앞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언 땅을 헤집고, 겹겹이 쌓인 눈을 뚫고 파란 竹筍이 돋아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孟宗은 벌떡 일어나 竹筍을 꺾어 들고 미친 듯이 집으로 뛰어왔다.

그것을 어머니에게 요리를 해드렸더니 오랫동안을 앓던 병이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孝子王祥은 효자 왕상은
慈母病中에 어머니께서 병중에
願食鯉魚하거늘 잉어 고기를 먹기 원하시거늘
出於前江하니 앞강에 나아가니
江水堅凍하나 강물이 굳게 얼어붙어 있었으나
登氷號泣하니 얼음위에 올라가 울부짖으니
水忽自解하여 물이 문득 스스로 녹아
三鯉躍出하도다. 세 마리의 잉어가 뛰어나왔다 한다.

 

<해설> 中國의 西晉시대 낭야군 기현이란 곳에 王祥이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어려서부터 성품이 지극한 孝子였지만 그만 불행하게 어려서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말았다.

그래서 王祥은 繼母 밑에서 자라게 되었는데, 繼母는 그에게 항상 無慈悲하게 대하고 아버지에게도 항상 이간질을 해서 아버지도 점점 그를 미워하기 시작했지만 王祥은 그럴 때마다 더욱 부모님께 恭遜하게 몸가짐을 조심했다.

부모님이 병에 걸리셨을 때에는 밤에도 옷을 벗지 않고 看護하였고, 탕약은 약이 제대로 달려졌는지를 반드시 자신이 먼저 맛보고 나서 올렸다.
언젠가 몹시도 추운 겨울에 繼母는 王祥에게 신선한 생선이 먹고 싶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王祥은 계모에게 신선한 생선을 잡아 드리려고 강에 나가 보았더니 그만 날씨가 너무 추워 강이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얼음을 깰 도구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王祥은 하는 수 없이 옷을 벗고 얼음위에 누워 체온으로 얼음을 녹여 물고기를 잡으려고 하였다.

그러자 갑자기 얼음이 녹으면서 물 속에서 잉어 두 마리가 얼음 위로 뛰어 올라 왔다고 한다.
언젠가는 또 繼母가 참새구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수십 마리의 참새가 그가 머물고 있는 천막으로 날아들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감탄하면서 이것은 모두 하늘이 그의 孝誠에 感動해서 일어난 일이라고 한다.
後漢 末期에 난리가 나자 그는 繼母를 도와 동생을 데리고 여산이라는 곳으로 피난을 가서 30년 동안을 숨어살았다.

나이 60세 官職에 나아갔으며, 西晉의 武帝 때에는 天子의 교육을 담당하는 太保라는 벼슬에까지 오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