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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면 금암리 오필열 효행비각(東二面 金岩里 吳弼㤠 孝行碑閣) 본문
오필렬은 자는 봉여鳳汝, 호는 운암雲岩, 본관은 고창高敞이다. 1858 년(철종 9) 동이면 금암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주위의 칭송이 끊이지 않았으며, 문학에도 재능을 발휘하여 인근 마을 영재 들의 교육에도 힘쓰니, 그의 가르침을 배운 제자들이 수백에 이르렀다.
그는 효행은 말로만 좋은 음식 과 의복 등으로 봉양하는 양구養口 보다 마음과 뜻을 따르는 양지養知 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 부 모를 섬길 때는 항상 기쁜 얼굴을 하고 슬픈 낯빛이나 성난 낯빛을 삼갔다. 또한 부드럽고 공손한 태 도로 부모를 대하였으며, 부모의 뜻을 조금도 거스르지 않았다. 특 히 아버지가 물고기를 즐겨 십 리,백 리를 마다하지 않고 구해서 봉양하였다고 한다. 이 후 아버지가 병석에 눕게 되자 밤낮으로 곁에서 모셨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3년간 시 묘하였다. 1932년 그의 장남과 장손이 후세의 귀감을 삼고자 동이면 금암리 용곡마을에 효자문을 건립하였다. 현재 효자문 안에는 ‘효자통훈대부오필렬지려孝子通訓大夫吳弼烈之閭’라 는 현판이 있고, 앞에는 2002년 후손들이 세운 효행비가 있다.
동이면 금암리(용정마을)에 위치한 통정대부를 지낸 오필열의 효행비이다
금암리는 고창오씨들의 집성촌이다
금암리는 군동면(郡東面) 용암리(龍岩里)라 불리던 마을이며, 1739년 기록에는 군동면 용암리에 47호가 살았고 1891년 신묘장적(辛卯帳籍)기록에는 55호에서 15세 이상 255명이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7년말 현재 금암1리가 52호, 금암2리가 44호 금암3리가 100호 총 196호가 살고 총 인구는 467명이다. 범양정밀주식회사를 비롯하여 5개의 기업체에서 116명이 종사하고 있다.
금암리 유래는 마을 뒤에 용암사란 절이 있고 큰 바위들이 용같이 뻗었다 하여 용암말 이라 불렸고 옆마을이 목시, 목쇠인데 목쇠는 목금(木金)으로 목금의 금(金)자와 용암의 암(岩)자를 따서 두 마을의 뒷글자를 합쳐서 금암리가 되었다.
금암리에는 충청북도문화재인 1545년 송정 전팽령이 건립한 양신정(養神亭)과 1765년 유림들에 의해 세워진 목담서원이 있다. 목담서원(鶩潭書院)과 목담서원에 모셔진 사서공 전식 선생의 영정, 명종 때 효자를 기리기 위한 효자정과 효자비, 그리고 그 효행을 뒷받침 하는 호천(虎泉) 등이 있다.
임진란 때 중봉 조헌선생을 도운 인봉 전승업선생은 개전초기에 중봉선생을 의병장으로 추대 의병 100명과 군수품을 모아 보은 차령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금산전투 후 연곤평에서 순절한 의병과 승병 1,000여명의 시신을 모아 오늘의 칠백의총을 만들고 중봉선생 유족을 돌보았다.
자연마을로는 압구정, 등나무마을, 새말, 솔밭말, 건너말, 용암말, 안골말, 황새골, 옥고대, 말참묵이가 있고 건너말은 빈집만 남아 있다. 용암말에 오필렬효자문과 청주한씨(淸州韓氏)효부비가 있다.
압구정은 고창오씨(高敞吳氏)가 입향조인 공조참의 오천(吳泉)공이 세종 16년(1434년)에 이곳에 터를 잡은 이래 20여대를 이어 살고 있다. 1978년 취락구조사업으로 적하리 분지벌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금암리로 집단이주 창앞마을을 이루었다.
압구정 뒤에 서당골이 있고 앞에는 갯들, 나마터, 씨드물, 돌가티, 부단지골, 막은골, 줄골이 있고 새마을 앞에서부터 대정목, 모새골, 샘골 그 앞에 새골이, 바위틈새골, 봇들, 못안이 있고, 둥구나무 마을 앞에 방아다리, 용암말 주변에 장나무골, 부흥산, 가는골, 서당골, 턱갈메기, 산지당, 탑선골, 당수말, 말래, 홍고개, 삼거리, 증갱이, 못안이 있다.
말참묵(말차목)이 앞에 수우골, 긴다랭이골, 탑송골, 부차골이 있다. 새말 주변에 줄골, 갯들, 강당, 봇들, 못안골, 찰방재, 새골, 샘골, 동자말, 새말 앞들이 있고 황새골, 못안, 섬말, 골말, 장수마루, 수골, 새터말, 뒷골, 삼거리, 찰방재가 있다.[옥천문화원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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