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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군 소수면 고마리 충효각(槐山郡 沼壽面 叩馬里 忠孝閣)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괴산군 소수면 고마리 충효각(槐山郡 沼壽面 叩馬里 忠孝閣)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2. 5. 23. 15:22

 

 

 

괴산군 소수면 고마리에 있는 하양허씨들의 충효각이다

괴산에서 음성방면으로 가다가 원남쪽으로 길을 접어 들면 처음으로 만나는 동네가 고마리이다

고마리라는 동네의 지명이 참 이채롭다

원래는 고마이귀(叩馬而歸)라는 말에서 나온 명칭이다

고마리에는 하양허씨들이 대성이다

고마리라는 지명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허후(許詡) 선생의 아들 허조(許造) 선생은 사육신과 함께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어 목숨이 위태로움을 깨닫고 스스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그러나 얼마 후에 허조 선생의 시신을 가져다가 다시 형을 집행하면서 두 아들인 연령(延齡)도 모두 죽였다. 이때 셋째 아들인 정(精)은 태어난 지 15일밖에 안 되어 차마 형을 집행하지 못하고 15살이 되기를 기다려서 형을 집행하기로 하였다. 어느덧 정의 나이가 15세에 이르자 몇 명의 대신이 잊지 않고 정을 죽이자고 왕에게 전언하였다. 그러나 허후 선생에게 어쩔 수 없이 사약을 내렸던 세조는 ‘허후와 허조가 비록 죄를 짓고 죽었으나 그 죄가 흉악한 일이라 할 수 없고, 또 허후는 선조가 믿었던 신하이니 내 차마 그의 대가 끊기게 할 수는 없다. 후의 손자 정을 충청도 괴산으로 귀양을 보내도록 하라’고 명하여 어린 생명만은 구할 수 있었다. 이때부터 정조가 죄를 면해줄 때까지 허정의 자손은 괴산 땅에 살면서 사정(思禎), 흥립(興立), 민(敏), 이충(以忠), 준(竣), 위(胃) 등 수많은 효자를 낳았으나 과거에 급제하여 가문을 빛낼 기회는 없었다. 훗날 조정에서는 허후 선생 부자의 죄를 면하고 시호를 내린 뒤 그 묘에 청주, 충주, 괴산, 청안, 연풍, 문의, 음성 등 7개 읍의 장으로 하여금 제사를 올리도록 하였다. 또한 정조는 ‘허후는 본래 청렴결백하여 자신을 잘 지켰고 충성스런 말을 직접 아뢰어 미움은 받았으나 그 정신이 백이(伯夷)·숙제(叔齊)에 뒤지지 않았다. 허후가 말을 타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라(叩馬而歸)’ 하였다. 그런 연유로 묘소가 있는 곳의 지명이 고말귀(叩馬歸)로 남아 있으나 묘와 함께 사당은 종손이 거창으로 옮겨갔다고 한다.

 

 

 

 

 

 

 

 

 

 

 

 

 

 

 

충효각안에는 하양허씨 문중에서 배출된 효자와 충신들의 정려문이 걸려있다.

찾아간 날도 후손 누군가가 주위를 깨끗히 정돈하여 놓았는지 깔끔하니 보기가 좋았다

 

최근에 세워진 홍살문이 있고 논과밭 경계로 하양허씨 가문에서 배출된

두명의 충신과 다섯명의 효자의 정려문이 걸려있다

 

 

 

 

 

 

 

 

 

 

 

 

 

 

 

하양(河陽)은 경상북도 경산시(慶山市)의 북부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고려 초에는 하주(河州)라 불리며 995년(성종 14)에 자사(刺使)가 파견되었다.

1018년(현종 9)에 하양(河陽)으로 개칭하였다.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었고, 1742년(영조 18)에 화성현(花城縣)으로 개칭하였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하양군(河陽郡)으로 바뀌었고, 1896년 경상북도로 이관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경산군에 편입되면서 하양면이 되었고, 1973년에 하양읍으로 승격하였다.

1995년 경산군과 경산시의 통합으로 경산시 하양읍이 되었다.

 

하양허씨(河陽許氏) 시조 허강안(許康安)은 고려 때 호부낭장(戶部郞將)을 역임했으며 가락국(駕洛國) 허황후(許皇后)의 33세손으로 전하는데,

말년(末年)에 하주자사(河州刺史)가 되어 하주(河州: 하양의 옛지명)에 정착하였다.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주를 본관으로 삼아 세계를 이어오다가 지명이 개칭됨에 따라 화성(花城)으로 개관(改貫)하였다가 이후 하양(河陽)으로 바꾸었다.그의 손자 허작린(許綽麟)은 검교대장군(檢校大將軍)을, 증손 허신(許愼)은 호부주사(戶部主事)·동정(同正) 등을 역임하며 가문의 기틀을 마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