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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취묵당 본문
괴강다리를 건너 감물쪽으로 길을 따라가면 이탄교를 지난다. 취묵당은 이탄다리를 건너 강둑으로 난 길을 따라 가는길도 있지만 이탄다리를 건너지 말고 감물쪽으로 조금 더 내려가면 좌측으로 임진왜란때 진주목사로 순절하여 영의정에 추증되였던 김시민장군의 사당인 충민사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다.
충민사도 구경하며 충민사와 작은동산 하나 사이로 둔 취묵당을 찾는길이 더욱 아기자기 하다. 가던날은 충민사에서 취묵당으로 가는 길을 지자체에서 공사가 한참이였다.
취묵당을 지은 김득신은 본관은 안동이며 자는 자공 호는 백곡이다. 김치의 아들로서 음보로 참봉을 지내고 문과에 급제하고 가선대부에 올라 안풍군에 습봉되였고 시인으로 이름을 얻었다.묘소는 증평군 증평읍 율리에 있다.
[증평읍 율리에 있는 김득신의 묘소]
[억만재의 유래]
옛날이나지금이나 학문이 높은 사람은 모두 부지런히 공부하여 이룬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글 잘하는 사람중에서 독서를 많이 한사람은 일일히 꼽아 볼 수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괴애 김수온은 문을 닫고서 책을 읽으며 밖을 내다보지 않다가 대청에 내려서서 낙엽을 보고서 비로소 가을임을 알았으며 허백당 성현은 낮에는 책을 읽고 밤에는 외우면서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었는데 변소에 갔다가 나오는 것을 잊었다고 했으며 김일손은 한유의 글을 1천번 읽었으며 윤결은 맹자를 일천번 읽었으며 소재 노수신은 논어를 이천번 읽었으며 백호 임재는 중용을 팔백번 읽었으며 간이 최립은 한서를 오천번 읽었으며 그 중에서 향적전만 만 번 읽었으며 창주 차운로는 주역을 오백번 읽었으며 동악 이안눌은 두시를 수천번 읽었으며 어우당 유몽인은 장자와 유종원의 글을 일천번 읽었다. 동면 정군평은 사기를 수천번 읽었다고 한다.그런데 나는 성질이 느리고 둔해서 책을 읽는 공력을 다른사람보다 갑절이나 들인다. 사기 한서와 유종원의 글은 모두 베껴서 만여번이나 읽었고 그 중에서 백이전을 가장 좋아하여 그것을 일억일만 삼천번이나 읽어 드디어 내 방을 억만재라 이름 짓고서 절귀 한수를 지었다.
진.한.당 송의글을 두루ㅡ 찾아서
입에서 침을 날리며 일만번 읽었네
백이전의 기괴한 문체 가장 좋아하여
훨훨 달리는 기운 구름 넘어 올라가네
지난 경술년에 큰 가뭄이 들어 팔도에 흉년이 들어서 그 이듬해에 굶주림과 염병으로 서울과 시골에 쌓인 시체가 이루 헤아릴수 없이 많았는데 사람들이 나에게 말하기를 "금년에죽은 사람수와 그대가 책 읽은 수를 비교하면 어느쪽이 더 많은가?" 하였다. 이것은 내가 책을 되풀이 하여 많이 읽은것을 놀린 것이다<종남총지>
괴산군에서 조선조때 선비가 글을 읽고 학동을 가르치던 재당은 괴산읍 소재 애한정 청천면 소재 암서재 연풍면입석리 소재 반계정 괴산읍 능촌리 소재 취묵당이 현존하고 있으며 정자형식을 갖추고 있다.취묵당은 괴강 줄기가 이탄을 지나능촌에 이르러 태극형을 이루는 산위에서 백사장등 광활한 경치를 한 눈에 보이고 물에 비친 달그림자를 감상하는 등 서정적 공간의 정자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기와집으로 내부는 통칸에 마루를 깔고 사방에 난간을 두르고 당안에는 백곡 김득신이 쓴 취묵당과 김교헌이 쓴 억만재라는 편액이 걸려 있었으나 현재는 분실되였다.
취묵정은 조선 헌종3년1662년)김득신이 지은 정자인데 괴산군 읍지에 취묵당 재 군동십리라는 기록이 있다.천장에는 취묵당시와 중수기 편액이 걸려있고 북쪽벽 상부엔 8대손 동호씨가 쓴 취묵당팔영(취묵당팔영)과 도산후인 이중식이 쓴 편액과 중건기 차운시 편액이 서쪽에는 백이전 일억일만 삼천번 중용을 일만팔천번 뜽 수십번 읽은 내용등이 적혀있는 독수기가 남쪽에는 10대손 태응선생이 쓴 취묵당 성감문 편액이 동쪽에는 후손등이 쓴 차운시등의 편액이 걸려있다.취묵당의 당 남쪽 네기둥에는 김득신의 대표작 용호를 걸어놓았다.
고목한운리(고목한운리)-고목은 한랭한 구름에 감싸이고
추산백우변(추산백우변)-가을산은 뿌옇게 내리는 소나기 사이로 보이네
모강풍랑기(모강풍랑기)-해 저무는 강에 풍랑이 일어나니
어자급회선(어자급회선)-어부는 급히 뱃머리를 돌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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