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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인면 오동리 피반령서낭당(懷仁面 梧桐里 皮盤嶺서낭당) 본문
청원군과 보은군에 경계가 되는 고개이다
현재는 미원쪽으로 해서 보은 가는길이 있으므로 많이 이용하지 않는다.
피반령 정상에 있는 서낭당이다 옛자취가 사라진 느낌이다
피반령에 얽힌 이야기-1
오리 이원익 선생이 경주목사가 되어 부임길에 올랐다. 서울에서 청주에 도착하니 경주호장(-지방관서의 우두머리 관리)이 사인교(四人橋-네 사람이 메는 가마)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있었다. 신임사또인 오리대감은 그때부터 사인교를 타고 임지인 경주를 향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때는 음력 6월로서 여간 더운 날이 아니어서 걷기조차 힘들었는데 가마를 메고 가자니 그 고통이란 말할 수 없었고 호장은 호장대로 옷이 비에 젖은 것처럼 땀에 젖어 걷기조차 힘들었다. 청주를 떠난 지 한나절쯤 걸어가니 크고 험한 고개가 나타났다. 평지를 걸어도 죽을 지경인데 가마를 메고 한낮에 고개를 넘을 가마꾼도 가마꾼이었지만, 호장이 사또를 보니 겨우 난쟁이를 면한 작은 키에 가마 위에서 천천히 부채질을 하면서 좌우의 산천을 둘러보며 거드럭거리고 있는지라 사또의 지혜를 시험해 볼겸 한번 골려줄 생각이 났다.
호장은 고개 밑에 이르자 가마를 멈추게 한 뒤 사또 앞에 나아가 허리를 굽힌 후,
“사또, 이 고개는 삼남지방에서 제일 높은 고개이온데, 만약 이 고개를 가마를 타시고 넘을 경우에는 가마꾼들이 피곤하여 회인가서 3~4일 유숙하여야 합니다.”하니
“하루속히 당도하여 밀린 업무를 처리할 형편이었는데 도중에 지체할 수야 있느냐? 내 걸어서 고개를 넘을 것이다.”하고 성큼성큼 고개를 걸어 넘다보니 호장이 히죽이죽 웃으며 따라 오고 있었다. 그제서야 호장의 장난을 알아차린 오리대감은 속으로 (이런 못된 놈이 있나?)하고는 걸음을 멈춘 뒤 따라오는 호장을 향하여 “여봐라! 내가 걸어 넘으면 너는 마땅히 기어서 넘어야 하느니라.” 사또의 지엄한 명령에 호장은 양손과 무릎을 발로 삼아 험난한 고개를 기어서 오를 수 밖에 없었다. 고개마루에 올라와 보니 호장의 손바닥과 무릎에는 온통 피가 나와서 차마 볼 수가 없었다. 회인서 하루를 쉬고 이튿날 보은으로 오는 도중에 다시 험한 고개에 닿았고 호장이 또 이 고개를 걸어서 넘으라고 하면 다시 기어 넘으라 할 것이 무서워 나무를 베어서 수레를 만들도록 한 후 수레 위에 사인교를 태운 후 고개를 넘었다고 한다.
이 뒤부터 “피발”이 되어 넘었다 하여 “피발령”, 수레로 넘었으므로 “수레티재”라고 불렀으며, 한문쓰기를 좋아한 사람들에 의하여 피발령은 피반령(皮盤嶺)으로 수리티재는 차령(車嶺)이라 표기하여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피반령에 얽힌 이야기-2
광해 10년(1618)에 조의제라는 선비가 상소를 올렸다가 금부에 끌려가 곤역을 당했는데, 그의 아버지 조동준 노인은 고개마루에 올라가 ‘내 아들 장할시고! 내 아들 장할시고!’하면서 덩실덩실 춤을 추다가 목에서 피가 쏟기 시작하므로 이를 본 선비 두명이 노인의 곧고 의리있는 행동에 감동하여 조노인의 시체를 업고 마을로 내려 오는데 무려 아홉 번이나 피를 쏟아 그 때마다 시체를 내려놓고 닦았으므로 이 고개를 피받이고개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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