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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면 관기리 고봉정사-2(馬老面 官基里 孤峰精舍-2)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마로면 관기리 고봉정사-2(馬老面 官基里 孤峰精舍-2)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2. 7. 15. 21:08

 

1981년 5월 1일 충청북도지방기념물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중기에 김정(:1486~1520)이 고봉()이라 칭하고 학문을 연마하던 삼파연류봉() 정상에 최수성(:1487~1521)이 고봉정()을 세우고 은거하였다. 후에 병암() 구수복(:1491~1535)이 이어받았다.

이들이 죽은 후 구수복의 5대손인 구봉우()가 퇴락해 있던 정자를 봉우리 아래로 옮겨 현재의 고봉정사를 지었다. 원래 정사()란 명망있는 선비가 경승지에 은거하면서 학문을 가르치던 일종의 사립교육시설이다.

김정은 1507년(중종 2)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정언()·순창군수 등을 지냈으나 폐비 윤씨의 복위를 상소하였다가 유배되었다. 1516년(중종 11)에 재등용되어 도승지 형조판서
를 지냈으나 1519년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사사되었는데 후에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최수성은 김굉필
()의 문인으로 시문·서화·음률·수학에 뛰어난 학자였다. 기묘사화 때 많은 동지들이 처형되자 관직을 버리고 유랑하던 중 1521년 신사무옥()에 연루되어 사형되었는데 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어 강릉향교에 배향되었다. 구수복은 이조정랑에 재직 중 역시 기묘사화에 휘말려 파직되었으나 1533년(중종 28) 복직되어 구례현감으로 재직 중에 죽었는데 후에 부제학에 추증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
을 올린 익공집으로 오른쪽 2칸에는 분합문()을 단 마루방을 두고 오른쪽 1칸에는 띠살문을 단 온돌방을 두었다. 왼쪽 방문 위에 송시열()이 쓴 ‘(고봉정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밖에 1981년에 새로 건립된 고봉사()와 관리사
, 외삼문 등의 건물이 경내에 있다. 사당인 고봉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에 홑처마 맞배지붕을 올린 물림집으로 지붕 좌우 측면에는 풍판(:비바람을 막기 위해 박공에 이어 대는 나무판)을 갖추었다. 이곳에는 최수성·김정·구수복 3인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봄과 가을에 제향하고 있다.

[출처] 고봉정사 [孤峰精舍 ] | 네이버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