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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읍 종곡리 김천부신도비(報恩邑 鍾谷里 金天富神道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보은군(報恩郡)

보은읍 종곡리 김천부신도비(報恩邑 鍾谷里 金天富神道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2. 9. 22. 20:24

 

 보은읍 종곡리 마을초입에 자리한 조선 명종 때의 학자 성운(成運)·김천부(金天富)의 신도비이다. 김천부가  을사사화를 계기로 은거하며 학문을 연마하던 건물로 1887년(고종 24) 후학들이 양현(兩賢)을 사모한다는 뜻에서 모현암이 종곡리에 있다. 신도비는 근래에 세운 듯 하다.

 

 

 

 

김천부는 1498(연산군 4)~1584(선조 17) │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대온(大蘊)이다. 판도판서 김장유의 7세손이며, 증조는 김처용(處庸), 할아버지는 판관 김증손(曾孫), 아버지는 부사직(副司直) 김벽(碧)이다. 보은읍 종곡리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당숙(堂叔)인 충암 김정에게 배우고 1519년(중종 14)에 식년시 진사에 급제하였으나, 그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스승이자 당숙인 김정을 비롯하여 사림들이 참혹한 화를 당하자 대과(大科)를 단념하고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이후 1541년(중종 36)에 준원전(濬源殿) 참봉에 천거되고 이어 제릉참봉(齊陵參奉)이 되고 1545년(인종 1)에 정릉참봉수(靖陵參奉守)가 되었다. 이어 사헌부 감찰(監察), 형조좌랑(刑曹佐郞)을 역임하고 장수현감(長水縣監)에 제수되었다. 1554년(명종 9)에 진천현감(鎭川縣監)에 임명되어 선정을 베풀고 1556년에 어머니 상을 당하여 고향에 돌아왔다. 1559년에 통례원(通禮院) 인의(引儀)에 제수 되고, 이후 내자시 주부(主簿)· 사헌부 감찰·장례원 사평(司評)·한성부 판관(判 官)을 역임하였다. 1564년(명종 19)에 통훈대부 김제군수(金堤郡守)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고 1569년(선조 2)에 고향에 돌아와 매서(妹婿)인 대곡 성운과 이웃해 일생을 보냈다. 그는 타고난 천성이 어질고 인자하여 남의 허물을 말하지 않았으며 탐욕이 없었다고 한다. 뒤에 장악원정(掌樂院正)에 추증(追贈)되었으며, 묘소는 보은읍 종곡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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