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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원면 매현리 문화유씨열녀문(大召院面 梅峴里 文化柳氏烈女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대소원면 매현리 문화유씨열녀문(大召院面 梅峴里 文化柳氏烈女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3. 12. 08:58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에 있는 조선 중기 송순의 처 문화유씨 열녀문이다. 송순의 처 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네 살 난 외아들을 두었는데, 남편을 청나라 오랑캐에게 잃고 쫓기는 몸이 되자 어린 외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며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節死)하였다. 이에 문화유씨의 절개와 부덕을 기리고자 1640년(인조 18) 정려가 내려졌고, 1701년(숙종 27) 현판을 하사받아 보관하다 1954년 강음송씨 종중에서 열녀문을 건립하였다. 충주시 대소원면 남쪽에 위치한 매현리의 팔송산 아래 장성백이마을에 위치한다. 장성백이마을은 매산수현이 갈라지는 분기점에 있다. 1954년 건립 이후 시멘트 사각기둥 위에 재건을 하여 초기에 건립된 모습을 거의 잃은 상태이다.서향 배치로 정면을 1칸으로 구획하고, 앞면에만 홍살을 둘렀으며, 나머지 3면은 벽으로 막았다. 구조는 시멘트 사각기둥 위에 재건한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지붕에는 기와를 얹었다. 홍살을 두른 내부에 정려문(旌閭文) 편액이 걸려 있다.

 

 

 

 

 

 

문화유씨는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열녀이다.본관은 문화(文化). 남편은 송순(宋淳)이다.송순문화유씨는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남편을 청나라 병사에게 잃고 혼자 몸이 되었을 때 네 살 난 아들을 몸종에게 맡기면서 가문의 혈통을 잇도록 부탁하고 절벽에서 몸을 던져 절사했다. 송순문화유씨의 정절과 부덕이 조정에 알려져 1640년(인조 18)에 정려를 명받았다. 1701년(숙종 27) 정려 현판을 하사받아 보관해오다가 1954년 현 충청북도 충주시 대소원면 매현리문화유씨 열녀문이 건립되었다. 문화유씨 열녀문은 서향으로 배치되어 있고 정면 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전면에만 홍살을 두르고 나머지 삼면은 벽으로 막았고 정려각 내부에 현판이 걸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