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소태면 동막리 이성국효자문(蘇台面 東幕里 李誠國孝子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소태면 동막리 이성국효자문(蘇台面 東幕里 李誠國孝子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3. 8. 10:41

 

이성국 효자문은 소태면 동막리에 위치하고 있다.동막리 마을초입을 지나면 삼거리가 보이며 마을 경로당이 눈에 들어온다.경로당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난길을 따라 들어가면 왼쪽 얕은언덕위에 효자문이 자리하고 있다.

 

 

 

이성국은 조선 중기 충청북도 충주 출신의 효자.

본관은 아산(牙山). 자는 필보(弼輔), 호는 매헌(梅軒)·봉주(鳳洲). 훈신 석번(碩藩)의 후예이다.

1576년(선조 9) 충주에서 태어난 이성국(李誠國)은 1591년(선조 24) 15세 어린 나이로 사마시에 급제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593년 세 차례나 적진으로 들어가 왜장 사야가[沙也可, 조선이름 김충선(金忠善)]를 설득하여 귀화시킨 공으로 원종공신에 오르고 선조로부터 금포와 옥대를 하사받았다.

선조가 환궁한 뒤에는 고향으로 내려와 충주 봉황산 아래에서 살았다. 아버지가 등창으로 고생을 하자 등창을 입으로 빨아서 고름을 빼냈으며 손가락을 잘라 피를 마시게 했다. 또한 어머니가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했으나 구할 수가 없어서 산에 올라가 울며 기도하니 꿩이 닭 집으로 날아 들어와서 어머니에게 꿩 고기를 먹일 수 있었다고 한다. 시묘를 할 때 묘 앞의 나무를 송충이가 갉아먹어 나뭇가지가 죽게 되자 송충이를 날로 삼켜 징계하니 해충이 모두 죽었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성국의 효성이 지극한 소치라고 하였다.

1885년(고종 22)에 충효 정려를 명받아 충청북도 충주시 소태면 동막리에 정려문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