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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면 안락리 유몽정묘소(老隱面 安樂里 柳夢鼎墓所) 본문

중원의 향기/충주시(忠州市)

노은면 안락리 유몽정묘소(老隱面 安樂里 柳夢鼎墓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2. 25. 08:27

 

1527(중종 22)∼1592(선조 25).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묘소는 충주시 노은면 안락리 마을입구에 신도비와 함께 자리하고있다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경임(景任), 호는 학암(鶴巖). 순행(順行)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희저(希渚)이고, 아버지는 감찰 용량(用良)이고, 어머니는 권련(權戀)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양시에 합격한 뒤 음직으로 현감에 임명되었고, 1574년(선조 7)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1년 영암군수로 재직시 무예에 능하지 못하다 하여 사간원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파직당하였다.

 

1587년 성주목사로 재직할 때에는 수감중인 죄수가 옥을 부수고 도망한 사건 및 풍속의 문란을 방지하지 못하였다 하여 다시 파직당하였다. 1592년 승정원우부승지에 임명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절사로 명나라에 파견되어 조선의 위급한 상황을 보고하고 구원병을 요청, 명나라 군대를 끌어오는 데 공을 세웠다. 임무를 마치고 귀국 도중 병으로 죽었다.

 

왜란이 끝나고 공신을 책봉하는 과정에서 그의 이름도 거론되었으나 조정의 의논이 달라 선무공신에는 책봉되지 못하였다. 광해군 때에 그의 아들 영(泳)이 상소하여 녹공(錄功)하여줄 것을 요청하였지만 선대의 논의를 번복할 수 없다는 이유로 추록되지 못하고 증직과 자손의 서용조처만 내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