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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인의 삶과 죽음 청주 명암동 가경동유적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백제인의 삶과 죽음 청주 명암동 가경동유적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3. 20. 12:56

 

  • [정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에 있는 주거지·돌덧널무덤[石槨墓]·움무덤[土壙墓] 등의 유구가 출토된 유적.

  • [발굴/조사경위]
  • 청주시에서 시행한 동부우회도로 건설공사 중 삼국시대 토기편과 돌덧널무덤의 잔해로 보이는 석재가 노출된 사실을 확인하여 1998년·1999년의 2차례에 걸쳐 국립청주박물관에서 긴급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는 Ⅰ·Ⅱ지구로 구분하여 연차적으로 이루어졌다.

  • [위치]
  • 상당구 명암동용담동 일원에 분포한 유적으로 청주시 동부우회도로 건설공사구간 내에 위치한다.

  • [현황]
  • 이 유적은 해발 100~115m의 구릉 말단부에 자리하며, 삼국시대의 주거지 10기·돌덧널무덤 1기·움무덤 6기·구덩유구 1기와 통일신라시대 돌덧널무덤 6기,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움무덤 40기 등 모두 64기의 유구가 조사되었다.

  • [발굴결과]
  • 주거지는 모두 백제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평면 방형계통의 주거지이나 파괴가 많이 이루어진 상태이다. 규모는 모두 길이와 너비가 5m이내이고 기둥구멍이 확인된 것(4기)과 불 땐 시설[爐址]이 있는 것(1기), 중복된 것(2기)이 있다. 출토유물은 동이·독[甕]·시루·짧은목단지[短頸壺]·바리[鉢] 등 주로 연질소성의 토기가 주류를 이루며, 쇠끌[鐵鑿]·덩이쇠[鐵鋌]·쇠화살촉[鐵鏃] 등의 철기류가 출토되었는데, 특히 덩이쇠가 주거지에서 출토된 예가 드물어 주목된다. 주거지 조성연대는 출토 유물상으로 볼 때 4세기대로 편년된다.

    움무덤은 등고선 방향과 평행하여 구릉사면에 조영되었고 무덤 바닥에 자갈을 깔아놓은 형태가 발견된 점, 토기와 철기류가 세트로 부장된 양상 등은 청주 신봉동(新鳳洞) 백제고분과 매우 유사하다. 출토유물은 짧은목단지·바리·유견호(有肩壺)·입넓은단지[廣口壺]·긴목단지[長頸壺]·뚜껑접시[蓋杯]·병[甁] 등의 토기류와 쇠낫[鐵鎌]·쇠화살촉[鐵鏃] 등의 철기가 나왔다. 움무덤은 4세기 말~5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여진다.

    돌덧널무덤은 경사진 지형에 깬돌[割石]을 이용하여 축조하였으나 대부분 파괴되어 정확한 무덤의 구조를 파악하기 어려우나 횡구식(橫口式) 5기·수혈식(竪穴式) 1기로 추정된다. 무덤 바닥에는 대부분 작은 돌을 깔아 시상대(屍床臺)를 마련하였고, 관못이 발견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시신을 그대로 안치했던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은 토기병·굽다리 완[臺附盌]·손잡이달린 단지[把手附壺] 등이 출토되었다. 돌덧널무덤의 조성연대는 7세기 후엽을 전후한 시기로 추정된다.

    고려~조선시대에 이르는 움무덤은 구릉 정상부와 가지능선상에 분포하며 대부분 목관(木棺)을 사용하였다. 이 중 특히 Ⅰ지구 1호 고려시대 무덤에서는 "단산오(옥)(丹山烏玉)"명 먹과 함께 원풍통보(元豊通寶)·경원동보(慶元通寶) 등 동전 4점과 철제가위·청동젓가락 등이 출토되었다. 먹은 길이 11.2㎝·너비 4㎝·두께 0.9㎝ 크기로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확인된 고려시대의 먹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고려시대 무덤 출토유물은 청자대접·청자병·백지접시·백지완 등의 도자류와 원앙연화문장신구(鴛鴦蓮花文裝身具)·동곳·은제동곳·동전 등의 금속유물 및 먹 등이 나왔으며, 무덤조성연대는 10세기 말~11세기 초로 추전된다. 조선시대 무덤 출토 백자는 16세기 무렵 지방가마에서 생산된 것으로 보여지며 무덤의 조성연대도 이 시기로 여겨진다
    .

  • [의의와 평가]
  • 명암동유적은 여러 시대의 다양한 유형의 유구가 조사된 복합유적으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4세기 무렵 청주지역 백제주거지의 입지와 주거형태를 살필 수 있는 자료가 축적된 점, 상대적으로 빈약한 청주지역의 신라묘제에 대한 고고학적 자료 및 신라세력의 확산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된 점, 무덤에서 고려시대 먹이 처음 출토된 점, 고려~조선시대 무덤 출토 유물들을 통하여 이 지역의 중세문화를 규명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확보한 점 등은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 [정의]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가경동에 있는 청동기시대에서 고려시대에 걸친 유물이 넓게 산포되어 있는 유적.

  • [발굴/조사경위]
  • 이 유적은 1990년 충북대학교 박물관이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청동기시대~고려시대에 걸쳐 유물이 넓게 산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에 따라 1995년 10월 22일부터 11월 20일까지 가경동 363-9번지 일대에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 [위치]
  • 흥덕구 가경3지구 택지개발사업지구내 해발 50m 내외의 얕은 구릉지대에 위치한다.

  • [발굴결과]
  • 가경동(佳景洞)유적에서는 조사 대상지역이 넓어 조사의 편의상 북동~남서 방향으로 뻗어내린 낮은 2개의 구릉을 중심으로 3구역으로 구분하여 조사를 실시하였다. 퇴적층위는 1구역에 가장 잘 남아있는데, 크게 5개층으로 나뉘어진다.

    Ⅰ층은 경작층이며, Ⅱ층은 교란층으로 여러 시기의 유물이 섞여서 나온다. Ⅲ층은 삼국시대층으로 회청색 경질토기가 출토되나, 거의 대부분 층위가 깍이어 나간 상태이다. Ⅳ층은 청동기문화층으로 집터·움·도랑·불뗀자리 등 유구와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간석기가 출토되고 있다.


    Ⅴ층은 홍적세시기에 퇴적된 층위이다. 이 가운데, 특히 Ⅴ층은 토양쐐기(Ice wedge)가 잘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15,000년 이전에 퇴적된 층위임을 알 수 있으며, 1·3구역에서 사냥돌과 많은 격지가 찾아지고 있어 층위와 관련하여 볼 때 주목된다. 청동기시대 문화층인 Ⅳ층은 짙은 갈색찰흙층으로, 여기에서 청동기시대 유구 12기와 불땐자리 4곳이 조사되었다.

    청동기시대 움집터는 평면모습이 모죽인 네모꼴 형태로 346×221×18㎝크기이며, 바닥은 맨바닥이고 집터 안에서 반달돌칼[半月形石刀] ·민무늬토기·붉은간토기 조각 등이 출토되었다. 7기가 조사된 움 유구는 평면모습이 원형·타원형·긴 타원형 등 여러 형태이며, 내부에서 민무늬토기조각·숫돌·화살촉·숯 등이 나왔다.

    도랑유구는 길이 10.85~18.08m·너비 15~110㎝·깊이 182.6㎝이고, 도랑 안에서 민무늬토기, 간석기[磨製石器] 등이 출토되었다. 그런데 청동기 문화층 내에 유구가 없이 민무늬토기와 간석기·숯이 많이 출토되어 주목되며, 이 층에서 출토된 숯과 1구역 1호 움 출토 숯을 방사성 동위원소 측정 한 결과 각각 2745±80bp, 2700±165bp의 연대 값이 나왔다.

    1구역에서는 4기의 움과 3기의 도랑이 나오며 움에서는1 민무늬토기[無文土器] 조각과 화살촉, 숫돌 등이 나온다. 2구역은 가장 많은 지형의 변화를 가져와, 지표 또는 교란층에서 많은 양의 민무늬토기와 간석기 및 격지 등이 찾아지고 있으나, 청동기문화층은 이미 거의 대부분 깍여 나간 상태이어서 수습되는 유물과 관련된 유구는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석비례층을 깊이 파고 축조한 돌덧널의 밑부분 1~2단 정도만이 남아있는 고려 초기의 돌덧널무덤[石槨墓] 3기와 조선시대의 움 무덤 / 회곽무덤 등 13기를 조사하였다.

    3구역은 구릉사면과 넓은 계곡부에 해당되는 곳으로 윗부분은 경작과 되메우기 등으로 부분적인 교란이 있으나, 청동기문화층 밑부분은 비교적 잘 남아 있었다. 여기에서 청동기시대 집터 1기와 움 3기, 도랑 1기 등을 조사하였다.

  • [현황]
  • 2002년 1월 11일에 충청북도 기념물 제120호로 지정되었다.

  • [의의와 평가]
  • 가경동(佳景洞)유적은 청동기~조선시대에 이르는 시기에 걸친 생활유구와 무덤유구가 함께 있는 복합유적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특히 청동기시대의 생활유적은 청주 내곡동·향정동, 청원군 궁평리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미호천(美湖川)을 중심으로 자리한 입지적 조건과 출토유물에서도 서로 비교되어 이 지역에 발달된 청동기문화를 이해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