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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백면 옥성리 옥성리사지(文白面 玉城里 玉城里寺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문백면 옥성리 옥성리사지(文白面 玉城里 玉城里寺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8. 22. 14:06

 

 옥성리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속하는 법정리이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옥산리(玉山里)의 ‘옥(玉)’자와 두성리(豆城里)의 ‘성(城)’자를 따서 옥성리(玉城里)라 하였다.
조선 말기 진천군 백락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능동리·두성리·판랑리·취라리·옥산리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옥성리라 하고 문백면에 편입되었다.

 

 

 

 

 

 

옥성리 사지탑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동북쪽 산 아래 옥성리 절터에 있었다.

지금은 주위는 모두 논등 경작지로 바뀌였고 절터임을 입증하는 유물은 남아있질 않다

1980년대초 옥성리사지에 남아있던 옥성리사지탑이 도난당한후 새로은 탑을 조성하여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옥성리 사지탑에 대한 글이 있어 옮겨왔다

현재는 도난당하여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으나, 옥성리 절터를 1963년 처음으로 조사한 정영호 교수의 글을 전재하면 다음과 같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옥산 부락에서 골짝으로 약 1㎞쯤 올라가면 노변 밭둑에 삼층석탑과 석불좌상이 유존한다. 주위 밭에 와편이 산란한 점으로 보아 이 일대가 사지로 추정되며 탑상도 현재 원위치는 아니나 이 사지의 유품에는 틀림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이곳에서 약 4㎞쯤 더 올라가면 또 한 곳에 사지가 있고 와편이 산재한다고 하는데 앞으로의 조사가 주목된다.

석탑은 도괴(倒壞)되었던 탓인지 각부에 파손이 많고 탑재가 놓인 순서도 바뀌어졌으며 결실된 부분도 있다. 옥개석은 삼층이 다 구비되었으나 탑신은 2층 한 층만이 남아 있다. 옥개의 받침은 사단식이며 낙수면은 급경사를 이루었고 전각에 반전이 있으나 둔후한 편이다.

탑신에는 양우주(兩隅柱)가 뚜렷이 각출되었다. 기단부도 결실되어 다만 하부에 길이 63㎝, 두께 12㎝의 방형 판석 1매만 놓여 있어서 원형을 알기는 곤란하다. 낙수면이나 옥개받침 등의 수법으로 미루어 연대는 고려 중기로 추정된다. 실측치는 1층 옥개석 길이 75㎝, 2층은 47㎝, 3층은 33㎝이며 2층 탑신은 높이 12㎝, 폭 36㎝, 우주 폭 6.5㎝이다.”

 

 

 

 

 

옥성리 절터의 주변이 모두 논으로 경작되고 있어 유구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절터에 대한 조선시대 이전의 문헌 기록은 없으나 일제강점기에 편찬된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높이 5장이나 되는 오층석탑과 그 옆에 작은 암자와 석불이 있는데,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으며 절은 이미 철폐되어 탑과 불상만이 홀로 남아 있다. 또 그 옆에는 강당 터가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 향촌의 자제들을 교육하던 곳으로 지금은 폐허가 되었다”고 한다.

기록에서 높이가 5장이라 한 것은 1980년대 초까지 남아 있던 석탑의 상태로 보아 조금 과장되었거나, 당시에는 석탑의 각부가 모두 완전하게 남아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기록을 참고해 보면, 사찰이 폐사된 후 서당과 같은 교육을 목적으로 한 강당이 있었으리라고 추측된다

 

 

옥성리사지터는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에 있는 고려시대 절터이다.

옥성리사지에 현재 남아있는 유물은 없으며 도나당한 옥성리탑과 석불좌상을 새로 모각하여 절터를 지키고 있다.

옥성리 절터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옥성리 옥산마을에서 북쪽으로 약 700m 지점에 있는 골재 채취 공장 맞은편에 위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