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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면 용기리 정선전씨효부문(草坪面 龍基里 旌善全氏孝婦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진천군(鎭川郡)

초평면 용기리 정선전씨효부문(草坪面 龍基里 旌善全氏孝婦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3. 7. 19:50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에 있는 조선 후기 효부 정선전씨의 정려각.

  • [개설]
  • 정선전씨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킨 인물로 부모를 효성으로 모시고 가정의 화목에 최선을 다하여 주변에 모범이 되었다. 부모 봉양에 정성을 다한 정선전씨는 다른 사람들이 흉내 낼 수 없는 효성으로 부모가 장수하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그의 효성을 기려 지방 유림들의 추천으로 1666년(현종 7) 정선전씨 효부문(旌善全氏 孝婦門)이 세워지게 되었다.

  • [위치]
  • 진천군청사거리에서 우회전하여 국도 21호선국도 34호선 청주·증평 방면으로 약 9㎞를 직진하면 초평삼거리에 이르게 된다. 초평삼거리에서 구정로 289번길 용산리 방면으로 우회전해 초평저수지를 지나 화산삼거리를 거쳐 약 2.2㎞ 지점에서 우회전하면 용기리로 가는 입구가 나온다. 정선전씨 효부문(旌善全氏 孝婦門)은 도로변 왼쪽 논 가운데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 [형태]
  • 정선전씨 효부문(旌善全氏 孝婦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으로 ‘효부문(孝婦門)’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사방을 홍살로 막고 그 주위를 다시 시멘트 담장으로 둘렀다. 출입구는 정면에 만들어 놓았으며, 내부 현판에는 ‘효부복호증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김우처숙부인정선전씨지문 경오년개립(孝婦復戶贈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金瑀妻淑夫人旌善全氏之門 庚午年改立)’이라고 써 있다. 정선전씨 효부문(旌善全氏 孝婦門) 담장 오른쪽에는 ‘효부복호증숙부인정선전씨지비(孝婦復戶贈淑夫人旌善全氏之碑)’가 세워져 있으며, 그 바로 앞에 장명등이 있다.

  • [현황]
  • 정선전씨 효부문(旌善全氏 孝婦門)은 논 가운데 위치하지만 접근이 용이하며 관리가 비교적 잘 되어 있어

    비문의 내용이나 편액을 살피는 데 어려움이 없다[진천디지털문화대전]

     

     

     

     

     

     

     

     

     

     

     

    정선전씨는 조선 후기 충청북도 진천의 효부이다.

  • [가계]
  • 본관은 정선(旌善). 승정원좌승지에 증직이 된 김우(金瑀)의 부인이다.

  • [활동사항]
  • 정선전씨(旌善全氏)는 삼종지도(三從之道)를 잘 지켜 부모를 효로 대하고, 여필종부(女必從夫)로 집안의 화목에 힘써 인근의 본보기가 되었다. 부모님의 말씀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드리는 일을 거른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시아버지가 갑자기 병이 나 자리에 눕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병수발에 온 정성을 쏟는 한편 신령님께 정화수를 떠 놓고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빌었다. 또한 오랫동안 누워 있는 시아버지를 목욕시키고 이도 잡아드렸다.

    몹시 추운 날 병석에 누운 시아버지가 참외와 참새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전씨는 한겨울에 어디서 참외를 구해야 할지 몰라 막막하기만 했다. 그러나 참외를 구해야겠다는 일념으로 눈 속을 헤매다가 그만 정신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런데 수염이 길고 흰 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참외를 주며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여 깜짝 놀라 깨어 보니 꿈이었다. 쓰러져 있던 바로 옆 자리를 보니 눈이 말끔히 녹은 자리에 싱싱한 참외가 덩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었다.

    전씨가 너무도 기뻐서 치맛자락에 참외를 담아 정신없이 산을 내려오는데 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참새 한 마리가 치마폭으로 날아들었다. 참외와 참새를 모두 구하여 집으로 와 시아버지께 먹게 하였더니, 그 길로 병이 씻은 듯 나아 오랫동안 편안하게 살았다. 여름에 산에 가서 얼음을 구해 오기도 하고 기이한 풀을 얻어 달여 먹여 병을 치료하기도
    하였다.

  • [상훈과 추모]
  • 1666년(현종 7) 김우정선전씨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림들이 중심이 되어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기리 662번지 용전마을정선전씨 효부문과 충효비를 함께 세웠다. 정선전씨에게는 숙부인(淑夫人)을 봉작하고, 남편 김우에게는 좌승지를 증직하였다.

     

     

     

     

     

     

     

    조선시대, 진천군 초평면 한 조그마한 마을에 효성이 지극한 전씨 부인이 살고 있었다. 그는 부모님의 말씀을 한 번도 어겨본 일이 없고, 아침저녁으로 문안 인사를 드리는 것을 단 한 번도 거른 적이 없었으며, 또한 남편을 하늘같이 섬겨 언제나 온 집안이 화목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시아버지께서 뜻하지 않은 병으로 그만 자리에 눕게 되었다. 전씨 부인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으나,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아버지 병간호에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 저녁이면 정한수를 떠 놓고 천지신명(天地神明)께 시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흰 눈이 쌓이고 몹시 추운 겨울 병석에 누워 계시던 시아버지께서 갑자기 오이와 참새고기를 먹고 싶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전씨 부인은 이 추운 겨울에 어디서 어떻게 오이를 구해야 좋을지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다. 그러나 전씨 부인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이를 꼭 구해 시아버지께 드려야겠다는 생각으로 눈 속을 헤매기 시작하였다. 심한 눈보라와 살을 에는 듯한 추위에 지친 전씨 부인은 그만 눈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데 하얀 옷을 입고 수염이 긴 할아버지 한 분이 나타나 “일어나거라. 네가 그토록 찾던 오이가 옆에 있으니 어서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꿈이었다.

    하도 이상하여 옆을 보니 쓰러졌던 자리에 눈이 말끔히 녹고 싱싱한 오이 덩굴에 오이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이었다. 전씨 부인은 너무도 기뻐 치맛자락에 오이를 모두 따 담아 집으로 막 달렸다. 전씨 부인이 정신없이 산을 내려오고 있을 때 “푸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참새 한 마리가 치마폭으로 날아들었다. 두 가지를 쉽게 구한 전씨 부인은 집으로 와 시아버지께 바치니 그 길로 시아버지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아 오래오래 살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전씨 부인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유림들이 관에 상소의 글을 내어 1666년에 효부문이 세워졌고, 부인에게는 숙부인이, 그의 남편에게는 좌승지의 증직이 내려졌다 한다.

  • [모티프 분석]
  • 「전씨 부인의 효심」의 주요 모티프는 ‘시아버지의 득병’, ‘엄동에 구한 오이와 참새’ 등이다. 이야기의 형성 시대와 연계하여 생각할 때 한겨울의 오이란 상상하기 어렵다. 주인공은 반드시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한다. 하지만 쉽게 이뤄질 수 있는 과제가 아니기에 마지막에는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지만 뜻하지 않은 조력자의 등장으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실현되고 있다. 그리고 그 가능의 배경에는 효부가 효행하는 감동이 숨겨져 있다.

    「전씨 부인의 효심」에 등장하는 하얀 옷을 입은 긴 수염의 할아버지는 평소 주인공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알고 있는 신성한 인물로 주인공을 도와주는 조력자이다. 평소 전씨 부인의 효행에 감동한 조력자가 천심을 움직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해 준다. 이런 이야기는 겨울에 대밭에서 우니까 죽순이 생겨서 병을 구완하였다는 「읍죽(泣竹)」의 경우처럼 『삼강오륜행실도(三綱五倫行實圖)』에 나오는 규범적 효행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