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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리면 사담리 분수대 석물(沙梨面 沙潭里 噴水臺 石物)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사리면 사담리 분수대 석물(沙梨面 沙潭里 噴水臺 石物)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3. 10. 2. 13:40

 

괴산군 사리면 사리면사무소엘 가면 마당에 작은 연못을 꾸며 놓았다.

연못엘 보면 분수대를 설치하였는데 분수대가 설치된 석조물의 형상이 예사롭지가 않다.

 

 

사리면사무소 연못에는 용 문양을 양각한 90×90×60㎝ 크기의 분수대가 있다.

사면에 용의 조각을 하였으며 아직도 그 모습이 살아있는 듯 용틀임을 하고 있는 듯 하다.

이 분수대는 1942년 사리면 방축리 삼거리 마을 동쪽 언덕에 세운 일본 신사(神祠)에서 가져다 놓았다고한다.
참배객은 신사 참배에 앞서 손과 입을 씻어야 하는데 그때 쓰던 석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어로 테미즈야(手水舍) 또는 쵸즈야라는 시설물에 놓은 수반(水盤)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테미즈야 수반이 면사무소 연못의 분수대로 사용한 사연은 이렇다.

사리면 신사는 광복 후 격분한 주민이 헐어버렸고 그곳에는 많은 석물이 나뒹굴고 있었다

헐려서 방치되고 있던 석물중 1956년에 사리면장이 면민들과 함께 이 석물을 면사무소로 옮겨 분수대 수반으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신사 참배는 일제강점기 많은 한국인에게 강요한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신사의 자리도 사직단등이 자리한 곳에 세움으로서 민족혼을 근본적으로 말살하려는 일본의 모습이 보인다.
일제는 '1면 1신사 원칙'을 내세워 강제로 신사를 건립하도록 해 광복 직전 충북에는 109개 읍·면 중 74곳에 신사를 세웠다고 한다.
일제가 한국인의 참배를 강요한 이 신사는 광복 직후 대부분 철거했지만

일부 지역에는 당시의 시설물이 남아 있어 식민지 민족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고 있다.

 

사리면사무소에 있는 분수대의 수반 역시 민족의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석물중에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