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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면 수두리 한천정(陽山面 數頭里 寒泉亭)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영동군(永同郡)

양산면 수두리 한천정(陽山面 數頭里 寒泉亭)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4. 4. 3. 16:45

 

영동군 향토유적 제 33 호 양산면 수두리에서 강을 건너 대곡 입구 언덕 강안에 위치하여 있다. 경치가 매우 아름다우며, 양산들이 한눈에 보이고, 금강을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이다. 정각은 목조 기와로 당대 거유(巨儒)였던 백우(白愚) 이시연(李時然)의 문인(門人)들이 그를 추모하여 세운 정각이다. 만취(晩翠) 이찬연(李燦然)의 기문(記文) 등이 있다. ※ 거 유(巨儒) : 이름난 유학자 기 문(記文) : 기록한 글

 

 

이시연(李時然)은

1841년(헌종 7) 10월 11일∼1918년 10월 15일. 조선 후기 유학자이다. 자는 중화(仲和)이고 호는 백우재(白愚齋) 또는 송헌(松軒)이다. 본관은 인천(仁川)이고 충청도 옥천군(沃川郡) 양내면(陽內面)에서 태어났는데 현재의 충청북도 영동군(永同郡) 양산면(陽山面)이다.

증조부는 이석귀(李錫龜)이고, 조부는 이원동(李源東)이며, 아버지는 이상구(李相矩)이다. 진주하씨(晉州河氏) 하대호(河大鎬의 딸과 결혼하였으나 먼저 세상을 떠나 옥천전씨(沃川全氏) 전석우(全錫祐)의 딸을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았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전념하여 인근에 명망이 높았다. 1878년(고종 15) 3월 임천(林川) 위에 서재를 지어 학생들과 함께 육경(六經)의 뜻을 강론하고, 이후 후진 양성에 힘을 쏟았다.

묘소는 영동군 학산면 삼정동(三丁洞)에 있으며 부인 하씨(河氏)와 합장되었다.

저서로 시문집인 《백우재집(白愚齋集)》이 있다.

1934년 이시연의 문인들이 영동군(永同郡) 양산면(陽山面) 수두리(藪頭里) 대곡 입구에 그를 추모하여 한천정(寒泉亭)을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