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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안면 문당리 서낭단(淸安面 文塘里 서낭단) 본문
성황단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인 서낭신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으로, ‘서낭단’이라고도 한다.주로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작은 돌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가까이에 나무가 있다.충북민속문화재 제13호로 2002년 7월12일 지정 관리되고있다.
문당리 성황단은 오리목 마을 입구에 있는데, 제단부와 좌우 돌탑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성황단은 비교적 정연한 형태로 쌓은 제단부를 중심으로 좌우에 2기의 원추형 돌단을 쌓아 남성 성기형의 적석단을 이루고 있다. 산에서 사룡(蛇龍)이 마을을 향하여 긴 꼬리를 하고 내려오는 형상의 돌무지 성황단으로 양쪽에 남성 성기 모양인 2개의 돌무지가 있고 가운데에 남근 모양의 형상으로 만든 적석단의 특이한 성황단이다.
서낭단의 위치가 마을로 접어드는 입구나 또는 고갯마루등에 있는 이유를 다른곳에서 찾는 사람들도 있다.마을수호개념으로 일종의 방어개념의 무기로서의 역할이다.평소에 돌무더기를 쌓아놓아 마을침입에 대한 방어기구로서의 역할을 찾는 경우도 있다. 다른 주장으로는 마을사람들끼리 돌팔매싸움(석전놀이, 마을끼리 대항전으로 연초에 벌어지며 이기는 쪽이 그해 풍년이 든다고 함)을 위해 준비해 놓은 돌이라는 학설도 있습니다.
서낭단은 마을의 수호신인 서낭을 모신 신당(神堂)을 말한다.성황당(城隍堂)의 명칭은 지방에 따라 선왕당 천왕당 국수당 국시당 등으로 불리며 한글로 서낭당이라고도 한다.서낭당은 보통 마을 어귀나 고개마루에 원뿔 모양으로 쌓은 돌무더기와 마을에서 신성시되는 나무(神樹) 또는 장승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형식은 5색 헝겊을 걸어놓은 서낭나무와 돌무더기를 쌓아놓은 누석단(累石壇)이 결합된 것이 일반적이나 누석단 또는 서낭나무만으로 구성되기도 한다.이밖에도 서낭나무와 당집이 함께 있거나, 입석(立石)의 형태인 것도 있다.서낭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으나 한국 전래의 천신(天神)과 산신(山神)이 복합된 것으로 여기에 중국에서 유입된 성황신앙(城隍信仰)이 융합되었다고 한다.성황신앙은 성읍의 둘레에 못을 파놓고 그 못에 깃든 신(神)이 성읍을 지켜준다고 믿는 풍습에서 비롯된 것으로 중국에서는 송대(宋代) 이후 보편화되었다.이 성황신앙이 재래의 서낭신앙의 마을수호라는 기능과 일치하고 서낭과 성황의 발음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서로 혼합되어 전해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서낭당은 지역간의 경계를 표시하거나, 전쟁시 석전(石戰)에 대비하여 쌓아놓은 돌무더기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이와 같은 실제적인 기능보다는 마을수호 소원성취 등을 기원하는 민간종교로서의 의미가 강하다.서낭당과 관계된 것으로, 서낭나무에 입던 옷의 저고리 동정이나 5색 헝겊 조각을 걸고 치병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거나, 새 집으로 이사할 때 옛 집의 잡귀들이 따라오지 못하도록 옷을 찢어 걸어놓기도 하는 속신이 있다.이밖에도 서낭당을 지날 때에 누석단에 돌 3개와 솔개비를 얹어놓고 침을 3번 뱉은 다음 왼쪽 발꿈치로 땅을 3번 구름으로써 행로의 안전과 행운을 기원하는 등 민간에서 전해지는 여러 가지 형태의 풍속이 있다.서낭당에 올리는 제의(祭儀)에는 마을수호와 질병의 예방을 위하여 마을굿의 형식으로 해마다 지내는 서낭제와 잡다한 개인적 소망을 기원하는 개별적인 제의가 있다.또한 서낭신은 무속에 수용되어 무신(巫神)의 하나가 되었으며 서낭굿이 굿의 한 마당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성황단은 마을이 형성되었던 조선시대 중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정초에 색색의 헝겊을 끼운 금줄을 적석단 옆의 신목(神木)에 쳐놓고 생기발복일(生氣發福日)을 골라 제사를 지내되 3일전부터 금기가 있었으나 요즈음은 사라졌다.
차츰 사라져가는 마을신앙 유제(遺制)의 보존과 조성된 시기가 분명하지 않으나 지금까지 알려진 일반적인 형태와는 다른 독특한 형태를 갖춘 제당(祭堂)형식으로 그 예가 드물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돌탑을 좌우에 두고 가운데에 폭 3m, 길이 5m 규모의 제사공간과 90㎝×90㎝정도 크기의 제물대를 갖춘 제단을 쌓은 것이다.제단부에서 산쪽으로 꼬리를 끌 듯 10여m 가량 돌무지를 늘여 쌓아 마을 주산으로 연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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