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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면 송평리 은행나무(文光面 松坪里 銀杏나무) 본문
문광면 송평리 은행정에 있는 은행나무입니다.송평리는 순창조씨들의 집성촌입니다
송평리에서 가까운 곳에 순창조씨들의 충신들을 모신 칠충사와 피세정이라는 정자가 있습니다.
송평교를 건너면서 처음 동네가 은행정입니다.동네 이름이 은행정이 된것은 마을중앙에 있는 은행나무 때문이랍니다.
송평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소나무가 많은 벌판이므로 소들 또는 송평이라 한데서 송평이라는 명칭이 생겼습니다.
자연마을로는 도람말, 은행정, 원송평 등이 있습니다. 도람말은 은행정 서쪽 산 모퉁이에 돌아 앉아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은행정은 700년이나 묵은 은행나무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입니다. 원송평은 송평의 원마을이라는 뜻이겠지요.
은행정은 소들 서쪽에 있는 마을로 고려 진사 조신이 낙향 불사이군하여 은거하던 곳이며 자손만대 무궁하라는 뜻으로 은행나무를 심었다 전하여 그후 마을
이름을 은행정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을의 지명이 유래가 된 은행나무는 이 마을에서 탄생하시고 고려충목왕때 예문관 대제학을 지낸 순창조씨의 8세손 조렴(趙廉 시호는 문정공(文貞公)
1293~1346)께서 심고 그 후손이 대를 이어 보살펴왔습니다.
이 은행나무는 1982년 11월 16일 보호수로 지정당시 수령6 60년 높이는 12미터 둘레는 10.5미터 이며 1992년 대대적으로 외과수술을 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은행나무는 충청북도 나무 7-9호입니다.
은행정과 관련이 있는 조렴(趙廉)은 자가 노직(魯直)이며 순창(淳昌 : 지금의 전라북도 순창군) 사람입니다. 충숙왕 때 과거에 급제한 후 다시 원나라의 제과(制科)에 급제해 요양등로총관지부사(遼陽等路摠管知府事)로 임명되었다. 전리좌랑(典理佐郞)으로 있을 때 소목(昭穆)의 제도를 논하였는데, 그의 논지는 본서 『예지(禮志)』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충혜왕 초에 정언(正言)으로 있으면서 허옹(許邕)·정천유(鄭天濡) 등과 함께 글을 올려, 최안도(崔安道)의 아들 최경(崔璟)이 남의 글을 훔쳐 과거에 급제한 것과 한종유(韓宗愈)가 선비의 선발에서 공정치 못했음을 비판했습니다. 왕이 조렴 등을 하옥하려 하자 폐신(嬖臣) 박련(朴連)이, 간관(諫官)에게 벌을 내려서는 안된다고 진언해 결국 중지했습니다. 뒤에 좌사의대부(左司議大夫)가 되었는데, 당시 황제의 조서를 소지한 원나라 사신이 입국해 왕이 조서를 영접하지 않았다고 억지를 쓰면서 양부(兩府)를 마구 다그치며 추궁하자 양부가 모두 잘못했다고 승복했습니다. 그러나 조렴은 우사의(右司議) 왕백(王伯)과 함께,
“군왕과 신하는 한 몸으로 화와 복을 함께 하는 법이며, 또한 신하가 임금의 잘못을 숨기는 것은 아들이 부친을 위하는 마음과 같은 이치입니다. 지금 양부가 자기 몸과 목숨을 사사로운 것으로 여겨 군왕과 부친에게 죄를 씌웠으니 법에 따라 처벌하소서.”
라고 상소했는데 내용이 실로 논리정연했다. 왕이 그 상소를 보고 두 사람을 의인이라 여겨 함께 밀직부사(密直副使)로 임명하였는데, 사의(司議)로서 추부(樞府)에 들어간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습니다. 충혜왕 후4년(1343)에 죽으니 나이 쉰 넷이었다. 일찍이 중국 조정의 사대부(士大夫)들과 경서와 사서를 토론했는데, 막히는 데가 전혀 없었습니다. 조렴[趙廉] (국역 고려사: 열전, 2006. 11. 20., 경인문화사)
은행정마을에 초입에 들어서면 눈에 띠는 은행나무와 함께 동네 집 벽에도 은행마무 벽화를 그려놓았습니다.
동네 주민들의 은행나무에 대한 애정의 척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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