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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일면 방서동 청주방정(南一面 方西洞 淸州方井) 본문

통합청주시/상당구(上黨區)

남일면 방서동 청주방정(南一面 方西洞 淸州方井)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5. 15. 06:19

 

방서마을은 남일면에 소재한 법정리 입니다.길가로 있는 청주한씨 사효려를 보며 사잇길로 진입을 하면 만날수 있는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네모난 우물입니다.

 

 

 

방정은 청주한씨(淸州韓氏)의 시조인 한란(韓蘭)이 살던 마을에 있던 우물의 이름으로 너비 47.5~62.5㎝, 길이 153.5㎝의 네모진 샘입니다.

 

 

 

1990년 12월 14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84호로 지정되었으며, 1998년 우물보호를 위해 유리로 된 뚜껑을 덮고 주변에 담장을 새로 정비하였습니다.방정은 현재 인근에 들어서 있는 수영장에서 지하수를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물이 나오지 않아 우물같은 실감이 나진 않지만,주문화원의 ‘청주의 역사 순례’ 코스로서 문화탐방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유리를 통해 보는 방정은 풀들만 가득하고 우물이라는 느낌이 들지를 않습니다.비록 전설로 전해져 오고 있기는 하나 청주를 본관으로 하는 대표적 성씨인 청주한씨 시조의 활약상과 마을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역사적으로 유래가 깊은 우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이곳은 청주 한씨의 시조 한란(韓蘭)이 살았던 곳으로, 어느해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지을 수가 없게 되자, 한란이 3일 동안 기도를 드리다 쓰러져 의식을 잃었는데 꿈속에 북쪽 장수가 나타나 창끝으로 땅을 찌르자 맑은 물이 콸콸 나왔다고 합니다. 너무 기뻐 소리를 지르다 깨어나 꿈속에서 보았던 곳을 파니 과연 많은 양의 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 뒤 문중 사람들과 함께 네모꼴로 큰 웅덩이를 파서 우물을 만들었는데, 이후 부터는 큰 가뭄이 들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고려 태조 왕건이 견훤을 토벌하고 이곳을 지나다 수십만군이 이 물을 먹었는데도 부족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 이때 ‘방정’(方井)의 이름을 받았다고 한다.

 

 

 

방정옆에는 방정교(方井橋)라고 씌여진 석재가 있습니다.석재에 쓰인 이름으로 보아 아마  이 부근에 작은다리가 있어 그 곳에 쓰였던 석재가 아닌가 합니다.방정교라 명칭이 있는것으로 보아 방정이 있은후 생긴 석교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방서동(方西洞)은 대머리(현 방서교회 부근)에 있는 큰 우물인 방정()의 서쪽 지역이므로 방서라 하였습니다.본래 청주군 남일하면()에 속한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대촌리(), 평촌리() 일부, 신목리() 일부를 병합하여 방서리라 하여 남일면()에 편입되었습니다.1983년 2월 15일 청주시에 편입되어 방서동이 되어, 용암·용정·방서동 관할 하에 있다가 2003년 용암2동의 관할이 되었습니다.

 

현재 방정리(方井里)의 행정구역은 방서동으로 되어 있는데 방정이나 방서보다는 ‘대머리’란 이름으로 통용된다. 예부터 청주한씨(淸州韓氏)를 ‘대머리한씨’라 부르게 된 유래는 분명한 것은 아니나 대머리란 말은 대인을 의미하는 ‘大’와 ‘멀(마을의 방언)’과의 합성어이고 ‘대멀’은 변음되어 대머리로 불렸다. 즉 시조인 태위공(太尉公)과 같은 큰 인물이 살던 마을이란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