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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조인학효자비(安南面 蓮舟里 曺仁學孝子碑)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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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남면 연주리 조인학효자비(安南面 蓮舟里 曺仁學孝子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6. 9. 4. 06:47

 

안남면 연주리에 있는 효자 조인학의 효자비 입니다.

비석의 전면에는 효자조인학지리(孝子曺仁學之里)라고 적혀 있습니다.쇠창살로 보호책을 두르고 있습니다.

 

 

 

효자 조인학은 안남면 연주리에서 출생하여 연주리에서 성장하였다. 그에게는 슬하의 자식이 없는 큰아버지 내외가 있었다.

자식이 없이 외롭게 살고 있는 큰아버지 내외를 조인학은 집으로 모시고와서 친부모 같이 전심으로 봉양을 하였습니다. 특히 큰아버지는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기도 하였다.지극정성으로 큰아버지 내외를 섬기며 또한 앞을 보지 못하는 큰아버지의 손과 발이 되여 큰아버지가 일상생활에 불편함이 없도록 열심을 내여 봉양하였다.

 

 

 

조인학은 이후 큰아버지 내외인 두분이 돌아가시자 예를다하여 장레를 치루고 정성껏 제사를 모셨다.

이러한 그의 효행이 전해지자 1971년 안남면 경로회원들이 그의 효행을 본받게 하고 후세에 전하고자 효행비를 세웠다.

효자조인학지리(孝子曺仁學之里)효자 조인학이 태여난 동네라는 뜻으로 일종의 효자비이다.[옥천군지]

 

조인학옹은 1909년 안남면 연주리에서 태어나 평생을 한 곳에서만 살아왔던 그야말로 토박이이다. 그 세대의 모든 사람들이 마찬가지였듯이 어려운 생활을 해왔으며 그런 중에서도 부모에게뿐만 아니라 큰아버지들에게까지 효성이 지극했다

6.25전쟁을 통해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어 전몰 유가족이 된 조옹은 생계가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셋째, 넷째 큰아버지 두 분을 모시는데 정성을 다했다. 두 분중 한 분은 소경인데다 아들이 없어 의지할 데가 없었으며 넷째 큰아버지 역시 전쟁통에 아들을 잃어 의지할 곳이 마땅치 않자 모셔다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발역할을 다한 것이다.

세상을 떠나서도 후하게 장례를 치루고 제사까지 맡아 하자 안남면에 그의 효행이 알려지게 되었고 이에 안남면 경로 회원들이 그의 효행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1971년 비석 거리에 1.7m의 석조비를 세웠다.

조옹은 현재 전몰 유가족으 로 국가로부터 나오는 연금을 받아 생활하고 있으며 부인과 는 88년에 사별하고 자식들의 권유로 만난 말벗으로 한옥수씨와 여생을 보내고 있다.
자식들이 조옹을 모시기 위해 애를 써 실제로 1년간 대전의 큰아들집에 거주도 했지만 답답해서 못살고 끝내 되돌아 왔다.

흔히 효자비 하면 먼 옛날의 잊혀진 비석 정도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반해 아직도 주위에 효행의 주인공들이 많이 있음 을 볼 때 가까운데서부터 배우려는 노력들이 필요하다고 하겠다.[1990년 5월5일 옥천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