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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극면차평리성주이씨정문(笙極面車坪里星州李氏旌門)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음성군(陰城郡)

생극면차평리성주이씨정문(笙極面車坪里星州李氏旌門)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0. 7. 6. 19:01

 

 

 

 

 

 

 

 

 

 

 

 

 

 

 

 

 

 

 

 

 

 

 

 金善慶의 妻 星州李氏 이야기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열녀 이야기.

[개설]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 이야기」는 임진왜란 때 죽음으로 치욕을 씻었던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에 관한 이야기이다.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는 훗날 성주이씨에게 나라에서 내린 열녀문이 세워져 있다.

[채록/수집상황]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로, 2005년에 발행된 『음성의 구비문학』에 수록되어 있다.

[내용]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성주이씨는 군자감판관으로 있던 남편 김선경이 전쟁터로 나가자 딸을 데리고 피난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생극면 차곡리에 있는 수리산으로 피난했으나, 이곳도 안심할 수 없게 되자 다른 곳으로 옮기려고 차평리 통산 밑을 지나다가 왜적들과 만나게 되었다. 이씨가 딸을 안고 어쩔 줄 몰라 전전긍긍하는데 왜적이 이리 떼처럼 덤벼들어 이씨를 강제로 끌어안고 가슴을 만지고 손목을 잡아당기며 희롱을 하였다.

이씨 부인은 딸을 껴안고 짐승처럼 덤비는 왜적에 반행했으나 여자의 몸으로 적을 당해 낼 수 없었다. 그러던 중 뜻밖에도 힘센 장사가 나타나 왜적을 쳐부수어 다행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젊은 장사는 당시 주부벼슬을 하고 있던 하진민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씨 부인은 백배 사례하고는, 딸을 아내로 삼아 달라고 청한 다음 왜적의 손이 닿았던 젖가슴과 손목을 칼로 잘라 버리고는 그 자리에서 자결을 하였다. 그 순간, 부인이 자결한 자리에 오색영롱한 서기가 수일을 감돌아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였는데, 훗날 이 사실이 나라에 알려져 정려가 내려졌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 이야기」는 왜적에게 희롱당한 것을 수치로 여겨 목숨을 끊음으로써 정절을 지키고자 했던 열녀 이야기이다. 열녀에 관한 이야기는 한국 고전 서사문학에서 가장 넓게, 그리고 많이 쓰여 온 소재인데, 주로 자신을 희생하여 정절을 지키는 열녀에 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 이야기」는 실제의 이야기가 전설로서 전해지는 사례로, 인물담에 속한다.

 

성주이씨 열녀문에 대하여

 

[정의]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선경의 처 성주이씨의 정절을 기리는 열녀문.

[위치]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으로 가는 국도 33호선 변인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차평2리에서 오른쪽 양재 쪽으로 난 농로를 따라 300m쯤 가면 왼편으로 열녀각이 보인다.

[변천]
성주이씨는 인문관 이휘의 딸로 충청북도 음성군 생극면 임곡리에서 출생하였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군자감 판관으로 있던 김선경은 싸움터로 나가고 이씨 부인은 집에 남아 있었다. 충주에서 이긴 왜적이 충청북도 음성군 지역에 들어왔다. 피난을 가던 이씨 부인이 왜적과 마주쳤다. 왜적은 부인에게 덤벼들었다. 부인은 딸을 껴안고 짐승과 같이 덤비는 왜적에게 반항했으나 여자로서는 적을 당해 낼 수가 없었다. 왜적들은 이씨를 끌어안고 손목을 잡고 젖을 만지는 등 희롱을 하였다.

이때 힘센 장사가 나타나 단숨에 왜적을 쳐부수니 왜적은 모두 달아났다. 이 젊은 장사는 당시 주부 벼슬을 지내던 하건민이라는 사람이었다. 이씨 부인은 하건민에게 백배사례하고 딸을 아내로 삼아 주기를 청하고 왜적의 손이 닿았던 젖과 손목을 칼로 잘라 버리고 자결하였다. 부인이 자결하자 오색영롱한 구름 같은 기운이 수일 간 감돌아 세상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했다. 훗날 이 사실이 알려져 임금께서 정려를 내렸다.

[형태]
성주이씨 열녀문은 정면, 측면 각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으로 사면은 홍살로 막고 양옆에 풍벽(風壁)을 달았다. 정려 현판에는 '절부증가선대부호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관행봉직랑군자감판관김선경처증정부인성주이씨지문(節婦贈嘉善大夫戶曹參判兼同知義禁府事五衛都總管行奉直郞軍資監判官金善慶妻贈貞夫人星州李氏之門)'이라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성상즉위삼년을축사월이십일이건후사십팔년임오오월오일중수우오십사년후을사사월이십구일이건우차평리통산전구묘(聖上卽位三年乙丑四月二十日異建後四十八年壬午五月五日重修又五十四年後乙巳四月二十九日移建又車平里通山前舊卯)'라고 기록되어 있다.

[현황]
임진왜란 때 정절을 지키기 위해 자결한 성주이씨를 기리기 위해 세운 정려로 최근에 재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