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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면 노호리 오상항묘지(芙江面 盧湖里 吳尙恒墓地) 본문

전국방방곡곡/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노호리 오상항묘지(芙江面 盧湖里 吳尙恒墓地)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2. 1. 16:54

 

노호1리에 자리하고 있는 보성인 오상항의 묘지입니다.

묘지석의 전면에는 유명조선국증통훈대부승정원좌승지보성오공상항지묘(有明朝鮮國贈通訓大夫承政院左承旨寶城吳公尙恒之墓)라고 적혀있으며

후면에는 오상항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습니다.

 

 

 

오상항은 오유립의 5남으로 노호리 가루개마을에 세거하며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오상항이 노호리에 정착한 이후로 많은 인물이 배출되였다. 오상항의 아들인 17세 오진해(吳震海. 1648-1743)는 학문과 문장이 뛰여났으며 후에 가선대부 호조참의에 증직되였다.오진해의 아들인 18세오재대(吳再大)는 자가 군일(君一)이며 통덕랑에 제수되였다.

오제대는 2남을 두었는데 19세오중기(吳重基.1697-1767)와 오융기(吳隆基.1704-1773)이다. 둘다 모두 통덕랑에 제수되였다.

 

 

 

오중기의 아들인 20세 오낙증(吳洛曾.1721-1796)은 자가 심보(心甫)이며 통훈대부 장예원정(通訓大夫 掌禮院正)에 증직되였다.

25세 오경수(吳暻秀. 1850-1915)는 자가 성재(成才)이고 호는 금보(錦甫)이다. 고종12년(1875)에 무과에 급제하였고 동학농민전쟁때에 정부군의 별군관에 소속되여 동학군과 전쟁에 참여하였다.당시 별군관은 양호제부(兩湖諸府)에 진을 치고 있었으며 선봉 이규태(李圭泰)와 소모사 이병훈(李秉勳)과 더불어 전쟁을 수행하였다. 1903년에는 궁내부 중추원의관에 임명되였고 품계는 선략장군이며 후에 승계하여 통훈대부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