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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강면 갈산리 최순이정려비(芙江面 葛山里 崔順伊旌閭碑) 본문

전국방방곡곡/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 갈산리 최순이정려비(芙江面 葛山里 崔順伊旌閭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7. 2. 4. 11:17



부강면 갈산리에 있는 열녀효부전주최순이여사정려비(烈女孝婦全州崔順伊女史旌閭碑)입니다.



갈산리는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에 있는 리()이다.

동쪽은 산지이며 서쪽으로는 평지이다. 철도가 가까이 있다. 자연마을에는 상갈, 하갈, 봉무, 칠미, 석골, 웃골이 있다. 상갈은 갈산리의 가장 위쪽 마을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고 하갈은 가장 아래쪽의 마을이란 뜻으로 이름 지어졌다. 칠미는 일곱 개의 명당 터가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석골은 돌이 많아 석골이라 불리었고 웃골은 구레골이라고 불렸으며 예부터 구리가 많이 묻혀서 구레골이라 불렸다.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에 속해 있다가, 2012년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으로 편입되었다. 갈산리 [Galsan-ri, 葛山里] (두산백과)




비석의 전면에는 열녀효부전주최순이여사정려비(烈女孝婦全州崔順伊女史旌閭碑)라고 적혀있으며 좌우후면에는 최순이 여사의 행적이 기술되여 있다.

비석의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최순이여사 정려기

유인 전주최씨 순이여사는 1929년 무진년 12월6일 연기군 동면 합강리 55번지에서 최갑석씨의 둘째딸로 태여나 1946년 18세에 청원군 부용면 갈산리 17번지 안동김문 동식씨와 혼인하였다 그러나 1950년 1월28일 안타깝게도 남편은 향년 25세의 젊은나이로 병사하였다. 그 때 여사는 22세의 꽃다운 나이였다.

그 후 여사는 일생 가시밭길을 걸으며 집안의 모든 어려운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오직 시부모 봉양과 아들 용우와 5남매의 시동생들을 온정성을 다하여 부양 성장 시켰고  6.25사변의 그 어려운 시기에도 송죽과 같이 정절을 지키며 가까운 일가친척은 물론 이웃지역 주민들에게도 인자한 사랑을 베풀고 화목과 우애를 돈독히 실천하므로 사회에 모범을 보였다.



특히 부군과 사별 당시 세살된 아들 용우를 휼룡히 성장 교육시켜 사회의 귀감이 되는 모범 교육자가 되게 하였으며 시부모에 대한 각별한 효성으로 문중의 평안과 우애를 위하여 며느리의 도리를 다하였다. 여사는 1981년 신유 1월 30일 향년 53세로 안타깝게 단명하게 졸하였다.

하늘도 그녀 생애의 정절을 감동하였음인가! 이 곳 지역 향당에서는 너도나도 뜻을 모아 그녀의 지극한 효성과 정절을 영원히 추모하고 후손들의 본보기가 되게 하고자 이 작은 돌로 정려비를 삼가 세운다. 안동김씨 갈산파 추진위원 태식일동



최순이 여사는 1976년 1월 20일 농강 이봉우선생사업회장의 효부상.

1976년 5월 8일 제 14회 어버이날 연기군수의 효부상. 2001년 신사 4월9일에 건립.



화강암을 이용하여 바닥을 만들었으며 스테인줄로 울타리를 둘렀다

마을입구에 깨끗하게 정비하여 잘 세워놓았다.

효의 사상이 자꾸만 옅어져 가는 현실에 많은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여 효의 참 가치를 알리는 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