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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풍면 원풍리 마애불(延豊面 院豊里 磨崖佛) 본문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물게 두 불상을 나란히 조각한 병좌상(竝坐像)이다. 12세기 무렵 조성된 고려시대 마애불이며 보물 제97호이다.
원풍리 마애불좌상은 연풍 면소재지에서 수안보 쪽을 향하다가 찻길가 왼쪽 기슭에 있다. 찻길 오른쪽에는 수십 명이 앉아 수건돌리기라도 할 만한 너럭바위들이 들어앉은 계곡이 이어져 있어, 지금과 같이 큰길이 뚫리기 전이라면 마애불들은 그 멋진 계곡을 굽어보며 앉았을 것이다.
높이 12m쯤 되는 큰 바위벼랑 위쪽에 가로 세로 4m 남짓한 감실을 파고 그 안에 거의 꽉차게 두 불상을 새겨넣었다. 머리 부분은 비교적 높게 돋을새김하였으나 그 아래로는 점차 새김이 얕아졌고 팔꿈치 아래, 무릎 부분은 대부분 떨어져나갔다. 바라보는 방향은 바위벼랑이 앉은 방향을 따라 동북쪽을 향했다.두 불상은 규모와 표정, 표현이 거의 같다. 넓적하고 평면적인 얼굴에 눈이 가늘고 길며 코는 뭉툭하다. 입은 꽉 다물어 근엄한 인상을 풍기는 한편 미소를 표현하려 했던 낌새도 미미하게 느껴진다. 두 분 중에서 오른쪽 불상은 코가 떨어져나갔다. 넓고 네모진 어깨와 굵은 팔이 강건한 느낌을 주지만 가슴 부분이 두께 없이 밋밋하여 그 느낌을 상쇄한다.
팔꿈치 아래는 거의 벗겨져 형태를 잘 알아볼 수 없다. 그러나 남은 윤곽으로 보아 두 손을 무릎 위에 포개었고 흘러내린 옷자락이 그 위를 덮고 있다. 두 어깨를 감싼 법의가 굵은 선각으로 표현되었고 불상 좌우의 좁은 공간에 보살상 같은 것이 새겨진 듯하나 불확실하다. 두광이 가늘게 표현되었고 머리를 둘러 화불이 다섯 구씩 새겨졌으며 불상에는 군데군데 채색을 했던 흔적도 있다. 예전에 어떤 구조물이 있었던 듯 감실 오른쪽 아래로부터 옆으로는 인공으로 뚫은 듯한 구멍들이 보인다.
이 마애불의 유래에 관해서는 고려 말 나옹대사가 상암사라는 절을 짓고 몸소 새겼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지원군으로 온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근처를 지나다가 장수처럼 힘있게 생긴 이 불상들 덕분에 인근에 장사가 많이 나겠다며 불상 뒤쪽의 혈을 찌르고 불상의 코를 떼어버렸다는 전설도 있다. 그외 바위와 불상 곳곳에 남아 있는 총탄 자국은 한국전쟁 때 생긴 상처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이불병좌상은 중국 북위시대, 특히 5~6세기에 많이 조성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다. 두 불상은 법화경 설화에 나오는 견보탑품의 석가여래와 다보여래로 보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답사여행의 길잡이 12 - 충북, 초판 1998., 6쇄 2003.,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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