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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면 송평리 김여성효자각(文光面 松坪里 金礪成孝子閣) 본문
김여성(金礪成) 1503(연산군 9)~1575(선조 8)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성청(聖淸), 호는 송암(松菴), 본관은 상산(商山)이다. 예조참판(禮曹參判) 지낸 김추(金樞)의 현손이며 승지(承旨)에 추증된 김승평(金昇平)의 아들이다. 중종반정에도 가담하여 정국원종공신(靖國原從功臣)에 녹선(錄選)되었고, 벼슬은 주부(主簿)를 지냈다. 어려서부터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여 집안 사정이 가난하였으나 아우 김여신(金礪新)과 함께 수시로 부모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장만하여 봉양하였다. 어머니가 병이 들었을때는 그 병세를 알아보기 위하여 변의 맛을 보아 가며 간호하였고,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무덤 옆에 묘막(墓幕)을 짓고 3년 동안 시묘를 살았다. 또한 바로 아버지가 돌아가시어 3년을 더 시묘를 살았다. 이처럼 그는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정성을 다하여 모셨으며, 돌아간 뒤에는 상례(喪禮)와 제례(祭禮)에 극진하였고 슬퍼하는 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한다. 1533년(중종 28)에 그의 아우 김여신(金礪新)과 함께 두 형제의 효행을 기리어 괴산읍 역말에 정려문이 세워졌고 이후 문광면 송평리로 옮겨졌다. 한편 그는 성리학에도 통달하여 이황·이이·조광조 등 여러 학자들과 편지로 시를 주고받았으며, 조광조가 사화로 죽자 만적시(輓吊詩)를 짓기도 하였다.[괴산군지]
송평리 마을 들어가는 입구에 서있다.
송평리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소나무가 많은 벌판이므로 소들 또는 송평이라 한데서 송평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도람말, 은행정, 원송평 등이 있다. 도람말은 은행정 서쪽 산 모퉁이에 돌아 앉아 있는 마을이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은행정은 700년이나 묵은 은행나무가 있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원송평은 송평의 원마을이다. 순창조씨들이 대성으로 자리잡고 있다. 송평리[Songpyeong-ri, 松坪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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