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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화양서원의 편액탁본(華陽書院의 扁額拓本) 본문
숙종의 어필을 볼수가 있다.
화양서원은 송시열이 학문을 닦고 제자들을 가르친 연고지이며, 일찍이 명나라 의종의 '비례부동' 4자의 친필을 얻어 암벽에 새기고 암자를 세웠던 곳이다. 또한 1717년에는 만동묘가 세워졌던 곳으로서 노론집권기에 국가로부터 많은 토지와 노비를 받는 등 송시열을 제향한 전국 44개 서원 가운데 위세가 가장 큰 서원이었다.
화양서원은 권세가 막강하여 백성들의 폐해가 심했다. 즉 제수전의 명목으로 각 군·현에 화양묵패를 발송해 강제로 돈을 걷거나, 춘추제향을 지낸 뒤 원임들에게 치번을 제공한다는 목적으로 복주촌과 복주호를 운영, 요역을 피하려는 부민으로부터 돈을 받고 피역시켜 부민이 지던 역을 가난한 백성들이 대신 떠맡게 하는 폐단을 일으켰다. 이러한 횡포가 거듭되자 1858년(철종 9) 영의정 김좌근(金左根)의 주청으로 복주촌을 없애고, 재화 징수도 금지시켰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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