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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면 백운리 밀양박씨재실비석군(靑山面 白雲里 密陽朴氏齋室碑石群) 본문
청산면 백운리에 위치한 청산밀성박씨의 재실앞에 있는 공적비입니다.
사적비와 공적비 그리고 헌성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청산면(靑山面)은 원래 신라초에 굴산현이었는데, 경덕왕 16년(757년)에 기산현이라 고치고, 삼년산군(현재 보은) 영역으로 하였다.
고려 현종 9년(1018년)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청산현(靑山縣)으로 고치고 경상도 상주목의 직속으로 하였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에 행정구역이 개편될 때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면서 충청도의 10현 중의 하나인 청산현이 되고, 현감으로 종 6품과 향교에서 가르치는 훈도로 종9품이 각각 배치되었다.그러나 그 다음해인 태종 14년(1414년)에 황간현과 통폐합되어 황청현이라 고친 후 청산현감을 두고 상주의 주성부곡(보은 내북면)을 청산에 부속시켰다. 1739년에 발행한 여지도서에는 청산현에 현내면, 북면, 동면, 남면, 서면, 주성면 등 6개면이 있었으며 현 청산면 관내인 북면에는 장연동리, 만월리, 대사전리, 예곡리 등 4개리 292호에서 15세 이상 된 사람 1,223명이 살았고, 동면에는 가지리, 효림리, 인정리 등 3개리 262호에서 15세 이상 된 사람 1,284명이 살았다.
그리고 청산현의 소재지인 현내면은 백운동리, 저전리, 하동리, 장위리 등 4개리 478호에서 15세 이상 된 사람 2,209명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에는 청산현(靑山縣)이 청산군(靑山郡)으로 잠시 승격되어 현내면을 군내면(郡內面)이라 고쳤고 평상, 교동, 백운, 상지전, 하지전, 하동, 천서, 자매, 학촌, 신평, 덕곡, 대사, 장위리의 13개리를 관할하였다. 이후 1914년 3월 1일 군면 통폐합에 따라 군내면과 북면 대부분, 동면 등 3개면을 합하여 청산면이라 고치고, 옥천군에 영속케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백운리(白雲里)는 원래 청산현 현내면(縣內面) 백운동리에 속하였던 마을로서 후에 백운리라 이름을 고쳐 현재에 이른다.
1739년 여지도서에 보면 현내면 백운동리라 하여 83호가 1891년 신묘장적에는 103호가 살았던 기록이 남아있다. 그 후 1914년 군면 통폐합에 따라 현내면이 청산면으로 되면서 옥천군에 소속하게 되었고 이때 백운리라 고쳐 부르게 되었다. 2007년말 현재 158호에 367명이 살고 있다.
백운리라 이름 짓게 된 것은 1460년경 조선 세조 때 청산현감이 이 마을의 경치가 좋아 동헌 위쪽에다 정자를 짓고 당대의 문장가이며 영중추부사를 지낸 김수온선생에게 정자 이름을 지어 달라고 청하였던바 “청산에는 백운이 없는 데가 없고 백운이 있는 데는 청산이 없는 데가 없다. 그리고 옛사람의 시에 청산은 백운밖에 푸르며 백운은 청산 속에 희고 희다라 하였으니 백운정이라 함이 좋겠다.”하여 백운정이라 이름 지었고 마을이름도 백운리라 하였다.
백운리의 절경은 백운리 뒷산인 덕의산에 수백 마리의 백학(白鶴)이 무리를 지어 석양빛을 받으며 내려앉는 장관을 백운귀학(白雲歸鶴)이라 하여 청산팔경 중 제2경으로 노래한 옛 사람들의 정취에서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고백이는 고씨, 박씨, 이씨가 마을을 형성했기에 고박이로 했다가 변천하여 고백이가 되었고, 중골은 백운리와 교평리 중간에 있어서 중골이라 부르게 되었다. 배맨바위(백골재)는 마을 위 덕의산 중턱에 위치하고 옛날 대홍수에 온 천지가 물에 잠겼을 때 배를 맸다하여 배맨바위가 되었다고 하며 한뎃마당은 마을중앙에 위치하여 널따란 광장을 이루고 있어 한뎃마당이라 부르며,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있어 식수 및 빨래터로 이용하여 왔다고 한다. 고백이고개(만월령)는 마을뒤 만월리와 백운리를 연결하는 고개로 옛날에는 주요교통로였다.
백운리에는 1946년 7월 31일 개교한 청산중학교와 1955년 6월 1일 개교한 청산고등학교가 있다. 청산여자중학교와 청산여자고등학교는 1978년 3월 1일 개교하였으며 1985년과 1986년에 청산중학교와 청산고등학교에 통합되었다.
백운리는 일평생 조국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유정 조동호선생의 출생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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