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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면 원동리 김녕김씨세거지지지비(伊院面 院洞里 金寧金氏世居之地碑)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옥천군(沃川郡)

이원면 원동리 김녕김씨세거지지지비(伊院面 院洞里 金寧金氏世居之地碑)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1. 9. 19:45





이원면은 본래 신라초에는 소리산현(所利山縣)이라 부르다가, 경덕왕 16년(757년) 이산현이라 고쳐 부르고 관성군(管城郡) 소속케 하였다.


고려 현종 9년(1018년)에 경상도 경산부(성주)에 소속 시켰다가 충선왕 5년(1313년) 옥주(沃州)에 소속 되었다. 조선 태종 13년(1413년) 지방행정제도 일제 개편 때 이산현(利山縣)이 폐현되고, 이남면(利南面)과 이내면(利內面)으로 분할되었다.

1739년에 발행한 여지도서에는 이남면을 평산리를 비롯한 9개리 619호에서 15세이상 2,687명이 살았으며, 이내면은 현리를 비롯한 8개리에 455호에서 15세이상 1,910명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895년 지방관제 개정에 의하여 이산현의 안쪽이 되므로 이내면이라 하여 9개리를 관할하였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행정구역을 조정할 때 이내면을 그대로 두고 이남면을 이남일소면(利南一所面)과 이남이소면(利南二所面)으로 나누었다. 1914년 4월 1일 이남면(利南面), 이내면(利內面)을 이남면(伊南面), 이내면(伊內面)으로 고치고, 이남이소면(伊南二所面)의 평산, 세산, 적하리를 동이면(東二面)에 편입시켰다.

1929년 4월 1일 행정구역 개편으로 이남과 이내 양면을 합병하여 이원면(伊院面)이라 고쳐 불렀다. 1973년 7월 1일 이원면 우산리를 동이면에 편입시킨 후 오늘에 이른다. 이원면의 면적은 64.7㎢로 옥천군의 남부에 위치하여, 동쪽은 영동군 심천면에, 서는 충남 금산군 군북면에, 남은 영동군 양산면에, 북은 옥천읍과 동이면에 닿는다.



원동리는 원래 옥천군 이내면(利內面) 원동리(院洞里)라 불러 오던 마을이다. 원동리라 부르게 된 것은 관리들의 여행 중에 숙식을 제공하여 주던 적등원(赤燈院)이 이곳에 있었기에 원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1739년 기록에는 이내면 원동리라 하여 62호가 살았으며 1891년 신묘장적에 의하면 72호가 살았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007년말 현재 원동1리 81호 173명, 원동2리 67호161명이 살고 있다. 원동 1구는 접둥으로, 강 언덕으로부터 벌담, 중간말, 웃말로 자연마을이 형성되어 있고 중간말과 웃말 사이를 왕복 4차선 경부국도가 관통하고 있다.

1999년 백지리(白池里)로 가는 마을도로가 개통 되고 금강에 교량이 개설되었는데, 이 도로 북쪽 강가에 옛날 표충사가 있었던 서원밭이 있고 길 남쪽 작은 동산에 유모 헌비의 비와 망선대(적등루) 옛터에 네개의 주춧돌이 남아있다. 망선대(望仙臺) 절벽앞 강가에 양수장이 있어 원동, 용방리 넓은 들의 젖줄이 되고 있다. 갈림길에서 심천 쪽으로 넘어가는 작은 언덕이 봉이둑이며 이 오르막 고개를 원재라고 한다. 원재의 논밭에서 기와편이 많이 발견되니 아마도 적등원이 있었던 곳으로 추측 된다.


중간말 농산물 집하장에서 웃말로 통하는 지하 통로가 있다. 이 통로에서 다리산 쪽을 향하여 꽁두골, 뱀마골, 고럼장골, 시거리, 베랭이, 불당골로 이어지며, 시거리 앞쪽에 큰배거리, 옛 철교 밑에 오배거리는 큰 길 나루였던 곳이다. 웃말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평달 농원 안내판이 있다. 다리산 중턱에 자리 잡은 이 농원은 규모도 크고 다양한 농사 활동을 하여 퇴직 후 귀농자의 귀감이 되고 있다.

원동 2리로 들어가는 진입로 옆에 보건지소가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다리산 아래에 자리잡은 담안이, 숯가마골은 함양박씨(咸陽朴氏), 선산곽씨(善山郭氏), 고령신씨(高靈申氏)가 주로 거주한다. 이들은 약 300여년 전부터 거의 동시에 이 마을에 살기 시작해 지금까지 화목하게 살아왔다. 담안이는 원래 못안에 있는 마을(潭內)이라는 뜻인데 현재 경부고속 철도와 국도가 댐의 둑처럼 가로막혀 옛지명을 입증해 주는 듯 하다.

숯가마골에서 조금 올라가면 봉화터(월이산봉수지)가 있고, 여기서 달이산(다리산)을 올려다보면 두꺼비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보이는데 마을 사람들은 두껍바위라 부른다.신성시 되는 바위이며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숯가마골 앞에서 서리고개 쪽으로 보이는 골짜기를 숯굴이라 부르는데 임진란 때 월이산의 정기를 끊기 위해 서리고개를 끊을 때 승천 준비 중이던 용마와 장군이 죽어 검은 피로 물들었기에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숯골에는 이 용마의 무덤이라고 하는 말 무덤이 있다.


원동소류지는 1973년 축조되었다.




경상남도 김녕(金寧, 김해의 옛 지명)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로 시조는 김은열(金殷說)의 9세손 김시흥(金時興)이다.

김시흥은 고려 때 묘청의 난을 진압하면서 공적을 세웠으며 명종 때 김녕군으로 봉해졌다. 김녕은 김해의 옛지명으로 김해김씨와 혼돈이 있어 김녕김씨를 후김()으로 불렀다가 조선말 고종의 왕명에 의해 김녕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고려시대에 평장사 김향(), 병부상서 김정병() 및 판도판서 김광저() 등이 배출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판서 김익생()·김윤달()·김문기(), 좌찬성 김인찬(), 한성판윤 김종남()·김응수(), 그리고 방어사 김언공()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