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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면 평산리 보호수(東二面 坪山里 保護樹) 본문
여기저기를 시간내여 다녀오곤 블로그에 올리지 못한 글들이 많다.
무에 그리 바쁘다고 하루에 하나씩 정성을 다하면 되련만 차일피일의 게으른 마음이 블로그에 많은 오점을 남기는 것 같다.
동이면 평산리 소도마을에 다녀온적이 언제던가?
마을 초입에 자리하고 닜는 평산리 보호수입니다
마을입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리분들의 안식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것 같습니다
보호수 옆으로는 정자도 있고 보호수의 수령과 내력이 적힌 이쁜 이름표도 있고 아직도 동네분들의 관심이 많은것 같습니다.
1936년 4월 20일 개교하여 지금까지 많은 학생들을 배출한 동이초등학교가 위치한 평산리는 본래 이남면(利南面)에 속해 있었으며 1739년 통계에는 77호가 살았고 1891년 신묘장적(辛卯帳籍)에는 소도리(所道里)라 하여 9호에서 15세 이상 48명이 살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910년 일제강점기 이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이남면(伊南面)을 이남일소(一所), 이남이소(二所)로 나누어 평산리는 이남이소면 관할로 되었다가 1914년 4월 1일 동이면(東二面)이 새로 생기면서 평산리와 소도리를 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이면 평산리는 들 가운데 있는 산이란 뜻으로 들미, 들뫼라 부르던 것을 한자화 하면서 평산(坪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소도는 원래 바드리로 한자화 하면서 그 뜻을 따서 소도(所道)라 부르게 되었다. 평산리 주변에는 서원이 있었던 성골(서원골), 갈골, 질기너머, 말무데미, 도장골, 평쟁이, 계릉골이 있고, 진털배기, 왱골에는 마을이 형성되고, 찬물샘이 있었던 등목골, 큰골모텡이, 청녕끝, 새골, 양지모퉁이, 함지날이 있고, 5일장이 섰던 장터, 길건너에 산막골, 징겡이, 장파골이 있다.
마을회관 주변으로 공판재, 한양 과거길 있었던 큰고개, 뒤깎음, 검지내, 집너머, 분무골, 다락바, 시거리, 움묵재, 아랫검지내, 학교날망이 있다. 바드리 주변에는 분무골, 약물내기, 검지내, 증갱이, 뒷골, 쑥고개, 노송골, 시거리, 띠마루가 있다.
1997년 7월에 큰 비가 내렸는데 성골에 6.25당시 희생된 보도연맹원들의 유골이 도로변에 모습을 드러내 6.25의 참상을 회생하게 한 상흔의 자리로 기억되고 있다.
이 마을은 성주이씨(星州李氏) 집성촌으로 8세조인 성종16년(1485년) 출생한 이석현(李碩賢)공이 낙향한 후 약500년을 이어 살아온 곳이다. 마을뒷산에는 망북비가 있는데 이 비석은 1919년 고종황제가 승하하자 성주이씨 문중의 이기윤(李箕允) 선생이 북향통곡하고 그 통한의 정을 “大皇帝崩 日月無光 臣民罔極 如喪孝?”(태황제가 돌아가시니 해와 달이 빛을 잃었구나 온 국민이 상을 당하니 망극하도다.) 라고 새겨 1920년에 세운 비이다. 비석 말미에 건국 529년 이라는 조선건국 연대가 기록되어 있는데 일제치하에서 일왕의 연호를 쓰지 않고 조선개국 연호를 사용하여 투철한 독립정신과 애국혼이 깃들어 있는 비이다.
성골(서원골)에는 1571년 서희여가 세운 쌍봉서원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소도마을 경로당 앞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종은 느티나무이며 나무들레는 2.9미터 수고는 16미터이며 평산리 670번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마을입구에 위치하며 지금도 마을의 수호목으로 섬기고 있으며 정자목으로 주님의 쉼터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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