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바람따라 구름따라 가는길

증평읍 장동리 증평천주교회(曾坪邑 莊洞里 曾坪天主敎會)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증평군(曾坪郡)

증평읍 장동리 증평천주교회(曾坪邑 莊洞里 曾坪天主敎會)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2. 9. 11:35




증평성당은 괴산 지역에 천주교 신자 수가 늘어나자 1920년 괴산군 고마리에 본당이 설립되었다. 하지만 고마리 천주교회가 외곽에 있어 사목활동에 어려움이 있자 1937년 5월 증평으로 이전하였다. 이전 당시에는 30평 규모의 초가집에 성당을 마련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교세가 위축되고 주임신부가 공석인 상태로 머물러서, 한 때 공소로 격하되기도 하였다. 1955년 다시 본당으로 승격되었고 1956년 8월 고딕 양식의 새로운 성당을 신축하였다.


증평성당은 증평읍 장동리에 자리하고 있다.

마을에 넓은 들판이 있어 장뜰()마을로도 불린다. 마을의 이름은 이전에 이 지역에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해서 붙여졌다고도 하고,

예전에 장치기를 하던 곳에서 유래했다고도 전한다. 증평읍 증평리()의 행정마을이었으며, 2002년 법정리로 분리되었다.



증평 천주교 성당은 2004년 충청북도가 간행한 [근대유산 목록화 조사보고서]에 보고되었다.

천주교 증평성당은 1950-1960년대의 건축사 외에 천주교의 의료사업 사레를 실필수 있는 메리놀 병원이 있었으나 현재 1950년에 건립된 성당과 사제관및 1957년에 건립된 수녀원과 강당이 남아있다.


정문을 들어서면 애주애인(愛主愛人)이라는 커다란 돌과 증평성당(曾坪聖堂)이 새겨진 입석이 자리하고 있다.




성당의 정면은 서쪽을 향하도록 되어있으며 성당 우측에 사제관이 있고 그 우측에는 메리놀 병원을 철거하고 세워진 교육관이 들어서 있다.

성당의 좌측에는 수녀원과 수녀원 뒷편에 강당이 자리하고 있다.



천주교의 의료사업으로 세워졌던 지금은 사라진 메리놀 병원의 자취가 메리놀회관이라는 이름으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메리놀병원은 최초로 의료보험 조합을 시행하였으며 당시 치료를 받던 사람들의 이야기로는 소아과, 폐병환자 치료 및 일반환자 등을 치료 했는데 하루 이용환자들이 평일에는 150명 정도였으며, 장날에는 200여명에 달했다고 한다. 더구나 뱀에 물리면 SNAKE-STON이라는 돌로 해독해 특효를 보았다 한다.

메리놀병원은 1970년대 초, 장동일대의 부지를 매입해 주택사업을 시행한 적이 있으며 그때 메리놀병원측에서 지은 주택이 아직도 남아 있다. 이 주택들을 ‘천주교주택’이라 부르기도 하고 해방촌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지금은 몇몇 가구가 개축을 했거나 개축할 예정이어서 점차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메리놀병원은 청주교구청에서 충북 음성에 설립하기로 했던 것을 당시 천주교신자인 손승모씨와 봉원동읍장(1917~)이 교구청을 수차례 방문하여 메리놀병원의 증평유치를 간곡히 부탁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음성에서는 병원 설립에 별 관심이 없고 증평에서는 많은 관심을 보이며 봉원동씨가 월급 6만원을 기부 채납하고 당시 도의회 의원 선거 출마자 김서웅씨가 10만원을 회사하여 병원부지 400평을 16만원에 매입하여 증평천주교에 희사한 것이 메리놀 병원의 설립동기였다며, 메리놀병원 유치를 위해 노력했던 당시 증평읍장 봉원동씨는 유치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전하고 있다.

병원유치 후 환자 중에는 거지가 많아 이들의 숙식을 제공하며 치료까지 해 주었으며, 증평지역에서 의료사업과 주택사업을 왕성히 하던 메리놀병원은 개원 30년만인 1957년 폐업했으며 현재는 천주교 교육관으로 활용하고 있다.




성당은 장방형의 몸체에 정면에서 좌측에 종탑을 두었고 우측에는 제단실을 설치하였다.

정면 출입구는 3개의 반원형 아치의 개구부를 두고있다. 사제관은 동쪽으로 트인 ㄷ 자 지형이며 수녀원과 강당은 단순한 장방형의 건물들이다.



성당과 사제관은 건축연대가 같으나 성당을 제외한 사제관,수녀원,강당의 벽돌이 서로 일치하며  성당과는 다른 벽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증평 천주교 성당은 1920년 9월20일 장호원(감곡)본당에서 분리해 괴산 고마리 본당(현재 고마리 공소-신부가 상존하지 않는 성당)으로 설정됐다.



1936년 4월에 고마리 본당에서 현재 위치로 이전 설립되어 1937년에 완공된 초가집 성당이었다.

괴산 고마리 성당에서 이전할 당시 윤회병(바오로)신부였고 이전한 후 증평 초대신부는 정원진(루가)신부였다.



그 후 1955년에 미국 메리놀 수도원에 있는 주은노(미카엘)신부가 부임해서 병원과 성당을 다시 건립해 1957년 8월 15일에 완공하였다.

메리놀병원은 뱀에 물린 환자 치료에 뛰어난 의술로 유명했다.

메리놀 병원은 1987년에 페업하였고 그 자리에 천주교 교육관을 신축하였는데 이는 건축사적 측면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의 천주교 의료사업을

살펴 볼수 있어 현대 지역사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는 건물이다.





증평성당은 1955년 6대 주은로 미카엘 주임신부가 성당 주보를 ‘치명자(순교자)의 모후 성당’으로 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후 이 성당은 주민들의 안식처 역할을 했다. 성당 교육관에 메리놀병원을 세워 주민들에게 의료 서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천주교회는 건물이 노후돼 신도들의 불편이 커지자 신축 계획을 세우고 2014년 착공해 지난해 10월 준공했다.


(재)청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이 33억원을 들여 신축한 성당은 1만866㎡의 터에 연건축면적 1280여㎡ 규모로 지어졌다.
이번에 새로 지은 건물은 성당, 사제관, 수녀원, 주방·창고 등 4개동이다. 교육관은 증축했고 강당은 리모델링했다.






메리놀 수녀회는 1912년 1월 6일에 M.J.로저스(1882~1955)가 설립한 미국 최초의 외방선교 수녀회이다.

M.J.로저스는 1882년 미국 매사추세츠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아시아 지역 선교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스미스 대학 재학 시절인 1906년 월시(J.A.Walsh) 신부를 만나 선교적 사명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후 보스턴(Boston) 공립학교 교사로 근무하면서 의학ㆍ간호학을 공부하여 장차 선교사업에 투신할 준비를 하였다. 그동안 수도생활을 희망하는 여성들이 생겨나, 1912년 1월 6일 메리놀 외방전교회의 책임자인 월시 신부의 지도 아래 공동체 생활을 시작하였다.



초창기 도미니크 수녀회의 수녀들로부터 수련을 받은 메리놀 수녀회는 1920년 2월 14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에 의해 도미니크회의 규칙을 준수하는 ‘성 도미니크 외방선교 수녀회’로 인가를 받았고, 1954년 교황청의 인준을 거쳐 메리놀 수녀회로 이름을 고쳤다.

1920년 로스앤젤레스시애틀에서 고아원ㆍ소수민족을 위한 학교 설립, 샌프란시스코에서 결핵 요양소를 설립하였다. 1921년에 홍콩을 시작으로 중국(1923)ㆍ한국(1924) 등 아시아 각국에 진출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으로 150여 명의 수녀들이 체포ㆍ억류ㆍ추방당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종전과 함께 아시아 지역으로 재진출하는 한편, 중남미ㆍ아프리카 지역까지 진출하였다. 현재 유럽을 제외한 아시아ㆍ아프리카ㆍ남아메리카 등지의 32개국에서 약 800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메리놀 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초청으로 1924년 한국에 진출하였으나 언어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어려움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다가 1932년 6월 27일, 한국 최초의 방인() 수녀회인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가 창립되었다. 1936년에는 신의주 성모병원을 개원하여 의사인 멜시(Meercy) 수녀가 진료를 담당하였는데,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소속 수녀들이 파견되어 약국과 간호업무를 도와주었다.

1941년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에 의해, 메리놀 수녀 10명을 비롯해서 메리놀회
선교사 35명이 미국으로 강제 추방되었다. 1949년 12월 28일 부산으로 입국한 메리놀 수녀회는, 이듬해 4월 15일 진료소를 개소하여 무료 진료를 실시하였다. 그 후 1950년 5월 1일 정식으로 의원 개설 허가를 받아 ‘메리놀 의원(지금의 메리놀 병원)’으로 명명하고 부산 지역 최초의 가톨릭 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 후 6·25 전쟁으로 발생한 피난민과 전상자들의 진료를 담당하였고, 구호 물자의 배급을 통해 전교 활동을 하였다. 메리놀 수녀회는 1950년대 중반부터 전국 각지에서 의료 사업을 추진하였고, 특히 1985년 용산에서 시작한 ‘막달레나의 집’은 매춘 여성들의 보호 외에 자립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1996년 3월에는 용산역 부근에 매춘 여성들을 위한 상담 사무실도 개설하였다.  메리놀수녀회 [Maryknoll Sisters, ─修女會] (두산백과)







[증평천주교회에서 가져온 옛적 메리놀병원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