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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읍 교성리 현감윤치응선정비(鎭川邑 校成里 縣監尹致膺善政碑) 본문
헌종 5년 6월 29일 계사 1839년 / 韓益東 등에게 관직을 제수함
윤치응의 아버지인 윤명렬에 대하여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다.
“윤명렬의 아비 면동은 글을 읽어 단정하고 결백한 선비다. 그런데 그의 자식이 글을 잘 못한다는 말은 이상하오.”
정조가 과거 급제자 명단에서 윤명렬을 삭제한 것을 두고 원상회복하도록 하며 한 말이다. 윤명렬은 삼일제에서 급제하여 정조가 곧바로 전시(殿試)에 응시하도록 했다. 그런데 당시 재상이었던 채제공이 품위도 없고 얼굴도 못생겨 임금을 가까이 모실 수 없다고 급제자 명단에서 삭제할 것을 주청하였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까닭이 있었다. 당시 채제공의 종질이 과거 급제자 명단에서 삭제되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것이 바로 윤명렬의 친족인 윤시동의 잘못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채제공이 잘 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윤명렬은 다시 합격자 명단에 들게 되었다.
어떤 점쟁이가 여러 재상들의 재식들과 함께 점을 보는데 윤명렬을 향해서 말했다.
“선비께서는 가난하고 궁색한 형상이니 함께 논의할 필요조차 없소.”
그 말을 들은 윤명렬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와 버렸다. 다음날, 점쟁이가 윤명렬의 집을 찾아왔다.
“당신은 매우 존귀한 상입니다. 특히 등허리의 상은 말할 것도 없이 귀중한 상이오. 내가 세 꾸러미의 돈을 당신에게 줄테니, 한 꾸러미는 술과 안주를 마련할 비용이며, 두 꾸러미는 지금 당장 양식과 땔감을 사는데 사용하시오. 그리고 뒷날 틀림없이 존귀하게 될 터이니 20년 뒤에 되돌려 주는 것으로 3천 냥짜리 어음을 하나 만들어 주시오.”
윤명렬이 흔쾌히 허락했다. 뒤에 윤명렬이 연경으로 사신을 갔다가 일을 잘 처리하고 돌아오자 강원 감사로 가게 되었다. 그런데 점쟁이가 찾아와 어음을 내보이며 약속을 말하자 윤명렬은 즉각 돈을 내주었다. 윤명렬의 부인도 얼굴이 못생겼는데, 네 아들을 두었다. 윤명렬이 장난삼아 아내에게 말했다.
“만약 내가 없었다면 부인의 그런 얼굴로 시집 갈 수 없었을 것이고, 나의 이 얼굴로도 부인이 아니었다면 장가들 수 없었을 것이오.”
윤명렬의 아들 윤치승은 판관, 윤치응은 목사, 윤치의와 윤치영은 모두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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