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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평읍남하리석조미륵보살입상-2(曾坪邑南下里石造彌勒菩薩立像) 본문
증평 남하리의 미륵당 마을 뒷산의 일명사지(逸名寺址)에 있었던 파불(破佛)로서 1930년대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불상의 발목 이하
부분이 땅속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높이는 149cm이다. 나발(螺髮)의 머리 위에는 작은 육계가 있고, 이마에는
백호를 양각으로 표현하여 돌출하여 있으나 상호를 시멘트로 보수하여 그 원형을 알 수 없으며, 수인은 오른손은 배 위에서 외장을 하였고 왼손은
팔을 가슴 위로 올린 것으로 보아 가슴 앞에서 내장한 것으로 보이나 파손이 심하여 확실하지는 않다. 양쪽의 손목에는 팔찌를 장식한 것으로
보인다. 법의는 통견(通肩)으로 두 팔에 걸쳐 흘러내렸으며 다리에 옷주름을 조각한 것이 나타나 있다. 이 불상의 조성시기는 조각수법으로 보아
대략 고려시대 초기로 보인다.
남하리 사지 석조미륵불입상은 미륵당 마을 옆 일명사지(逸名寺址)에 있는데 본래는 보개석(寶蓋石)을 머리에 얹은 입상으로 믿어지나 지금은 보개석이
없다. 발이 콘크리트 바닥에 묻혀 있어 정확한 크기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높이는 350cm이며 머리에는 관대가 있는 비교적 높은 보관(寶冠)을
썼는데, 두 귀 위에 장방형의 홈이 있어 보관에 장식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만한 상호에는 이마에 백호가 양각으로 표현되어 있고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으며 수인은 오른손을 배 위에 붙여 외장하고 왼손은 가슴 앞으로 올려 연꽃을 잡고 있다. 양쪽의 팔목에는 팔찌를 끼고 있어
주목된다. 통견(通肩)의 법의(法衣)는 두 팔에 걸쳐 흘러내렸고 배 아래에서 활모양의 주름을 표현하였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이나 규모의 장대함으로
보아 대략 고려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증평읍 남하리 마을 논밭 사이에 북쪽을 향하여 서 있는 불상으로, 작은 2구의 불상과 함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49년 마을 뒷산에 성주사를 세운 윤월인 스님이 이 불상들을 모아 다시 세웠다가 한국전쟁 후 마을의 수호부처로서 주민들이 보호하고 있다.
발 아래부분이 땅에 묻혀 있는 이 불상은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왼손을 가슴부분에 들어 연꽃송이를 받치고 있는 보살상이다.
보관을 써서 머리부분이 상당히 큰 편이고, 어깨가 좁으며 몸의 양감은 편평하여 전체적으로 길쭉한 사각형의 형태를 보인다.
미소짓는 얼굴의 표정이 잘 조각되어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가슴부분이 넓게 벌어지게 표현되었고 아래부분에서는 두 다리에 둥근 옷주름이 늘어져 있다.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350㎝의 거대한 크기로 고려시대 중기 이후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문화재청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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