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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성면 송동리 만송재(七星面 松洞里 萬松齋) 본문

충북의 바람소리/괴산군(槐山郡)

칠성면 송동리 만송재(七星面 松洞里 萬松齋)

충북나그네(푸른바다) 2018. 12. 15. 17:06



송동리 마을초입에 자리하고 있는 만송재(萬松齋)라는 각자가되어있는 비석입니다.

효자창은군창녕성공휘익한입향지(孝子昌恩君昌寧成公諱翊漢入鄕地)라고 음기된 글자가 보입니다.



송동리는 본면의 서부에 위치한 농촌마을이다. 소나무 골짜기 속에 있었으므로 솔골이라 부른데서 송동이라는 명칭이 생겼다. 자연마을로는 갈골, 서원리 등이 있다. 갈골은 갈곡이라고도 부르며 양지말 앞에 있는 마을로 칡이 많은 골짜기라 하여 붙은 이름이다. 서원리는 솔골 서북쪽에 화암서원이 있는 마을이다. 화암서원은 광해 14년에 세워서 고종때 헐렸다가 1955년 가을에 복구 되었다.



성익한은 자는 봉래로 본관은 창녕으로 성시하의 손자이며 창원군 성이징의 아들이다. 그의 아바지가 50세에 천연두에 걸려 병세가 위독하게 되자 증세에 따라 약을 조절하여 시탕하였다. 그는 밤잠도 자지않고 병석을 떠나지 않는 등 병간호를 조금도 게을리 하지않아 수개월만에 아바지를 병에서 회복시켰다.

그의 나이 50세에 친상을 당하여서는 상복을 벗지않고 여막에서 3년을 법도에 의하여 자내니 주위에서 효자라 칭송하였다.

1728년 이인좌의 난이 평정된 뒤에 판사 이만창과 참판 이익수의 천거로 인하여 공신의 적손으로 맹연에 참석하기도 하였다.

특별히 동지중추에 제수되고 창은군에 봉해져 충훈부당상이 되었다.